조류독감 사태를 바라보며
조류독감 사태를 바라보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08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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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범 제주특별자치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장

[제주일보]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알렸던 붉은 닭이 수난의 연속이다. 지난 겨울 조류독감(AI)으로 인해 3100만마리에 이르는 닭이 살처분 됐고 몇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아 다시 되풀이 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안전지대라고 여겨지던 제주에서 조류독감 신고가 접수된 지 단 5일 만에 14만5000수의 가금류가 살처분 됐고 앞으로 얼마나 더 살처분 될지 가늠조차 힘든 상황이다. 육지부에서 반입된 1000수의 닭에 의한 피해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제주특별법에는 제주의 청정지역을 유지하기 위해 반출·반입되는 수산물과 식물, 가축과 그 생산물 등에 대한 검사와 주사, 격리, 억류, 반·출입 금지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제주지역에 이러한 권한을 위임한 이유는 제주가 섬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식물과 가축의 병해충이 새로이 유입될 경우 섬 전체로 확산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무엇보다도 1차 산업을 기간산업으로 하고 있는 제주가 큰 피해를 받기 때문이라고 본다.

철새가 머무는 기간에는 어김없이 조류독감이 발생해 살처분과 매몰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는 육지부와는 달리 제주는 도정과 생산자가 노력하고 도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해준 덕분에 지금까지 철새의 분변에서만 바이러스가 나타날 뿐 농가 감염사례가 전무해 제주의 청정이미지가 부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류독감 발생으로 인해 축산업 분야의 피해뿐만 아니라 관광산업과 서민경제에 까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솔직히 육지부 농가의 무책임한 처사에서 비롯된 이번 사태에 대해 억울한 측면도 많지만 우리 스스로도 되짚어 봐야 할 사항들이 분명히 있다.

우선 제주의 방역조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내 축산 관련 부서들은 가축전염병에 대한 방역 업무만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축산물 위생업무와 동물 복지 등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전문성과 업무집중도가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한 현행 구조에서조차 3명이 결원된 상태로 업무의 연속성과 책임성, 대응능력에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조류독감과 구제역, 돼지열병 청정지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발생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데 그 준비가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신속한 방역조치를 위해 조류독감 및 구제역 정밀진단기관 지정을 받아야 한다. 현재 분석실과 분석장비 등 검사능력은 있어도 지정요건에 부합되는 인력이 없어 검사결과에 대한 신뢰도 문제와 방역대책 수립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육지부의 경우 6개의 지자체가 구제역 정밀진단기관으로 지정 받았고 5개 지자체가 조류독감 정밀진단기관으로 지정 받아 신속한 분석과 이를 토대로 한 방역조치가 가능한 반면 제주의 경우에는 육지부로 시료를 보내 분석결과를 받아보고 나서야 제대로 된 방역조치가 가능하다.

더불어 이번 여름철 조류독감의 발생은 기존 발생패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기존의 방역대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가축질병의 연중 발생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연중방역 체계와 상시 모니터링 및 신고 체계를 갖춰야 한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오일시장의 가금류 생축 거래에 대해서도 방역의 시각에서 체계적인 유통관리와 근본적인 종계시스템 마련 등 제주의 가금류 산업 발전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번 조류독감으로 인해 축산자원의 보루로 여겨지던 축산진흥원의 제주재래닭 마저 살처분 돼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더 이상 관련 대책에 소홀 한다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프랑스에 유명한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에서 전 유럽인구의 30% 이상의 생명을 빼앗은 폐스트균에 맞설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했다. 역병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지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조류독감을 완벽하게 막아내기는 어렵지만 미리 준비하고 대응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제주에서 처음 발병한 조류독감을 바라보면서 되새기고 싶은 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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