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에도 감귤 동해‧태풍피해 심각
조선후기에도 감귤 동해‧태풍피해 심각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6.0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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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육박물관, 19세기 중반 목사 공문 묶은 ‘탐라계록‧제주목관첩’ 국역 발간
감귤 작황‧중죄인 심리‧어민 조난‧군역 폐단 등 수록…향토교육자료로 유용

[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제주도의 각종 귤과(橘果)는 금년 정월에 눈이 오거나 온 뒤의 추위가 아주 혹독하여 관청과 개인이 심은 것이 태반이 마르고 손상되어 개화가 매우 적었던 터에, 5월과 6월 두 차례의 태풍으로 조금 열매를 맺은 것도 거의 다 긁히고 덜어졌다고 했습니다.”

조선 헌종 7년(1841년) 8월 26일 제주목사 이원조는 조정에 각종 귤과의 현황과 계수 통계를 보고했다. 당시에도 감귤 동해(凍害)와 풍상과(風傷果) 발생이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후기 제주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문서가 번역돼 출간됐다.

제주교육박물관(관장 김보은)은 19세기 중반 제주목에서 중앙에 보고한 장계와 공문들을 한글로 번역한 향토교육자료집 ‘국역 탐라계록(耽羅啓錄), 제주목관첩(濟州牧關牒)’을 한권으로 묶어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탐라계록’은 이원조 목사가 재임 기간인 1841년(헌종 7년) 윤3월부터 1843년(헌종 9년) 6월까지 제주지역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을 국왕에게 보고하거나 청원한 총 105건의 장계들을 정리한 책이다.

국립제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책에는 제주 해역에 자주 출현하는 이양선과 조난사고 보고, 농사 현황, 귤나무 작황 및 진상 현황, 중죄인에 대한 심리 내용, 말의 진상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헌종 8년(1842년) 6월 6일 장계에는 석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기우제를 지내는 도중 6월 2일과 3일 넉넉할 정도로 비가 내려 기우제를 멈췄다고 보고했다.

이날 장계는 “비록 여러 차례 가랑비가 내리기도 하고 뿌리기도 하였지만 겨우 먼지를 적실 정도였다”고 상황을 설명하고 “곧이어 건조하고 가물어서 이른 싹은 점차 시들어 마르고 늦게 파종한 것은 오히려 경작한 곳에 눌러 앉으니 재해를 당한 백성들의 사정이 참으로 황망하고 민망합니다”라고 적었다.

‘제주목관첩’은 1845년(헌종 11년) 정월부터 1854년(철종 5년) 4월까지 10년간 제주목사로 재임한 권직, 이의식, 장인식, 이현공, 백희수, 목인배 등 6명이 조정에 올린 공문 총 99건을 비변사에서 등록한 책이다.

제주 해역의 미확인 선박 현황, 귤나무 현황, 표류민과 관련된 내용, 환곡(還穀)과 군역(軍役)의 폐단, 우도와 가파도의 개간과 입주에 관한 내용 등이 수록됐다.

원본은 규장각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들 책의 국역은 고창석 전 제주대 사학과 교수가 맡았다.

제주교육박물관 김보은 관장은 “‘탐라계록’과 ‘제주목관첩’은 조선 후기 제주사회의 모습을 살피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며 “도내 각급학교와 도서관, 유관기관에 배포해 연구 및 교육 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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