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도스립디가?
잘 도스립디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04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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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종. 문학박사 / 서울제주도민회 신문 편집위원장

[제주일보] “잘 도스령 오라.”

어렸을 적 심부름을 할 때마다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다. ‘말을 잘 전하고 오라’는 어머니의 신신당부였던 것이다. 필자는 어린 마음에 실수를 할까 염려되어서 전하란 말을 귀 기울여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필자에게 제주어 ‘도스리다’를 생각나게 한 것은 대선 기간에 귀와 눈을 괴롭히는 말과 SNS의 홍수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가 궁금하여 모처럼 친목 모임에 나가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긍정적 얘기는 없고 상대가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일방적인 험담과 비난으로 서로의 감정이 상하기 일쑤였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초대하여 들어간 SNS 단체 대화방에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눈만 피로할 뿐이었다.

제주어 ‘도스리다’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더 보태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도스리는 것’은 제주어의 ‘소도리’와는 좀 다르다. ‘소도리’는 이 사람에게는 저 사람 말을, 저 사람에게는 이 사람 말을 좋지 않게 전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소도리’는 남이 한 말이나 행동을 상대에게 전하는 면에서는 ‘도스리는 것’과 같을 수 있으나 확인도 안 된 부정적인 말들을 일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는 면에서 대선 기간에 오고 간 많은 말들이 ‘도스림’보다는 ‘소도리’에 가깝다. 소도리는 나중에 ‘말을 했네, 안했네’ 하면서 삼자대면하여 사실 여부를 따지게 되는데 이를 ‘소도리 맞춤’이라고 한다. 대선 기간 중에 흑색선전으로 소송들이 난무한 것도 ‘소도리 맞춤’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앞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소통 방식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SNS는 좋든 싫든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서로를 잇는 소통의 통로로 SNS를 이용하는 데 반해서 나이든 세대들은 서로간의 대화보다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해주는 경향이 있다. 필자의 주변만 그런지는 몰라도 지인들에게서 오는 상당수의 카톡 대화가 그렇다. 대화방 알림음이 울려서 기대를 갖고 들어갔는데 쓸데없는 정보이거나 이미 남들이 전해준 정보만 있다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이런 방식의 소통은 오히려 단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SNS가 피할 수 없는 소통 방식이라면 적어도 서로에게 피로감을 가져다주는 일방적인 방식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 MIT의 사회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셰리 터클 (Sherry Turkle) 교수의 말처럼 ‘기술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지 않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현명한 수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고향에 있는 친구들이 만든 온라인 SNS 모임방은 필자에게는 안식처다. 그날 그날의 소소한 일상을 전하고 때론 오프라인으로 모여서 올레길을 걸으며 자연을 배경으로 함께 찍은 사진들을 올린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필자는 온라인 상이지만 친구들과 이런 일상을 공유함으로써 마음의 휴식을 얻곤 한다. 민주주의가 오래전부터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친구들 사이에 첨예한 대립을 가져올 수 있는 정치와 종교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고향 친구들이 만든 모임방에선 어느 한 사람도 가짜 뉴스로 판을 치는 정치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조그만 일상사에도 서로 축하와 위로를 나누는 청정 모임방이다.

이번 대선 기간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소통 방식인 SNS가 악성 소도리를 전하는 소도리꾼들의 온상이 되어 안타까웠다. 이제부터는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나서 소도리가 아닌 이런저런 얘기들을 도스리면서 정을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으면 한다.

대선이 끝나고 수많은 단체 대화방이 잠잠해져서 모처럼 SNS 피로증후군에서 벗어나 일상의 평온을 되찾았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평온을 깨우던 대화방의 알림이 더 이상 자극하지 않아서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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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2017-07-07 14:13:55
참으로 좋은 글을 만난것 같습니다
정겨운 제주어에 대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