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당신도 흉터가 있군요…내게도 있는데”
“어, 당신도 흉터가 있군요…내게도 있는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0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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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윤성희 ‘거기, 당신’
(좌측)거기, 당신 책 표지, (우측) 윤성희 작가

[제주일보] 언제부터인가 고민을 털어놓거나 상처를 고백하는 사람들을 마주대하기가 괴롭다. 내가 하는 뻔한 위로가 나를 믿어주는 마음에 반하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윤성희의 ‘거기, 당신’을 꺼내 읽는다. 특별할 것 없는 인물들이 낯선 이를 만나 친구가 되는 몇 개의 이야기들이 묶인 책. 그 과정에서 타인을 조심스레 위로하는 방법을 일러주는 일종의 매뉴얼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읽을 때마다 마음에 와 닿는 위로의 방법들이 달라지는데, 이번에는 두 가지 방법이 눈에 들어왔다.

 

# 방법 하나 - 흉터의 공유

‘안녕, 물고기자리’의 ‘나’는 우연히 동창생 S를 만나 엉겁결에 집들이에 초대받고 S의 친구 E와 H를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지만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며 가까워지다가 각자의 몸에 있는 흉터에 얽힌 얘기를 나누게 된다.

흉터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서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상처를 나누고 공유하게 된다. 정말로 흉터가 없다고 고백한 ‘나’ 역시 불판에서 튀어 오른 기름 한 방울로 손등 위에 흉터가 생긴다.

흉터가 없다고 흉터를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면서 위로의 공동체 안으로 편입되어 상처를 나누는 ‘우리’가 된다. 후에 ‘나’도 타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손등 위의 흉터에 얽힌 이야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나와 같지는 않지만 너에게도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그 아픔을 ‘안다’고 섣불리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알 것 같다’고 조심스레 짐작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상처의 크기를 비교하지 않고 상처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 아마 위로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 방법 둘 - 함께 먹기

‘봉자네 분식집’의 주인공 그녀는 실종된 남자친구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오랜만에 허기를 느끼고 ‘봉자네 분식집’이라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간다. 우연히 식당 주인여자가 중학교동창임을 알고 마주앉아 함께 밥을 먹다가 주인 여자인 ‘봉자엄마’ 역시 딸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함께 밥을 먹기 전, 그녀에게 봉자엄마는 옛 동창이었던 식당 여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밥을 먹고 봉자엄마가 마시던 커피를 자신의 커피잔에 붓는 순간, 봉자엄마의 아픔을 나누어 먹으며 친구가 된다. 봉자엄마 역시 남자친구의 실종을 견뎌내고 있는 그녀와 함께 된장찌개를 끓여먹으며 그녀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이 ‘함께 먹는 밥’ 으로 그녀들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를 극복해내면서 결국엔 함께 새 가게를 연다. 진정한 의미의 ‘식구(食口)’가 된 것이다. ‘함께 먹기’에서 ‘함께 살기’로 나아가는 연대의 과정이 뭉클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타인의 영역 안에 완전히 들어간 후 특별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위로라는 생각에 겁먹고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다. 하지만 ‘거기, 당신’ 속의 인물들은 결코 타인의 상처 안으로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심상하게 흉터에 얽힌 이야기를 묻고 밥을 먹으며 조용히 서로를 보듬을 뿐이다. 타인의 상처는 완전히 품어주거나 극복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바라보고 인정해야할 영역으로 보는 것이다.

너의 상처가 덧나지 않을 거리 밖에서 네 아픔을 응시하고 생각하고 내 안에서 다시 내면화해보는 것.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찾은 위로의 방법이다. 다른 분들도 ‘거기, 당신’의 인물들의 따뜻한 마음들 속에서 타인을 위로하는 스스로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강희진 제주도서관 사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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