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거품에 묻힌 제주
투기 거품에 묻힌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6.0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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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고추는 보통 5월 중순 이전까지 어린 모종을 심는 것이지, 고추달린 모종을 심는 농민이 있다면 동네에서 손가락질 당해 사람대접도 못 받는다.”

몇 년 전 한 장관 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의혹이 일자 시민단체가 낸 논평의 일부다. 문제의 후보자가 매입한 농지에서 농지법 위반 의혹이 제기됐다. 잔디가 깔린 밭에 듬성듬성 다자란 고추가 급하게 심어진 모습이 공개됐다. 농지법 위반 의혹을 없애기 위해 급조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비등했고, 시민단체는 코미디라고 일갈했다. 잔디와 고추의 융합이 창조경제냐는 조롱하기까지 나왔다. 논평 제목은 ‘고추를 괴롭히지 말라’였다.

제주 전역에 몰아친 부동산 투기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기폭제가 제주 제2공항이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제2공항 건설계획 발표를 전후해 뛰기 시작한 땅값은 제주 전역의 땅을 할퀴었다. 이는 공시지가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건설교통부가 올해 1월 1일 기준 전국 개별공시지가를 발표한 결과 제주지역 상승률은 부동의 전국 1위다. 지난해까지 합치면 2년간 50% 올랐다. 제주 땅값은 2011년 평균 ㎡당 2만291원에서 올해는 ㎡당 4만330원으로 7년 사이 갑절 올랐다. 그런데 이 조차 현장에선 웃음거리가 된다. 실제 거래 가격은 공시지가와 비교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뛰었다.

#위장 농민 가짜 농지 수두룩

제주 땅값이 뛴 것은 복합적 요인이 작용했다. 그런데 그 속을 살펴보면 주범은 활개 친 투기세력이다. 전국의 투기세력들이 공항건설이라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경관 좋은 중산간 길목과 해안가 땅은 대부분 이들 수중에 들어갔다.

임야뿐만 아니다. 취득 때 엄격한 조건이 따르는 농지도 엉망진창이다. 2008년 이후 농사를 하겠다면서 농지를 사들인 뒤 영농활동을 하지 않아 적발된 ‘위장농민’만 해도 5000명에 이른다. ‘농자천하지대본’도 투기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잔디 위에 고추모종을 심지는 않았지만 이를 모방한 ‘위장 농지’가 도 전역에 널렸다.

생소하지만 인천국제공항이 소재한 영종도 인근엔 시도 등 작은 섬이 있다. 영종도에서 배로 10분 거리인 이들 섬은 부동산 투기 광풍 후유증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국 모델’이다.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영종대교가 개통된 2000년 중반 이곳과 영종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건설된다는 소문이 나면서 외지인의 투기가 급증했다. 하지만 다리 건설 사업은 흐지부지됐고 부동산 거품은 가라앉았다. 은행 빚을 내서 땅을 산 사람들은 쫄딱 망했다. 땅은 모두 경매로 넘어갔다. 2010년 19건밖에 없던 이 지역 경매 물량은 2015년에는 200건이 넘어섰다. 이를 보도한 언론은 ‘투기과열 십년 후 상황반전, 거품 빠진 섬 가라앉고 있다’ 고 그 실상을 전했다.

#불로소득 양산 사회적 손실

제주가 이를 닮지 말라는 법이 없다. ‘투자’라고 에둘러 말하지만 실상은 투기다. 투기는 불로소득을 불러 온다. 불로소득은 다른 사람의 손해를 전제한 경제 개념이다. 누군가 손해 본다는 결과를 전제로 하기에 불로소득은 악(惡)이다. 개인과 소수만 이익을 보고 사회적 부(富)를 창출하지 못한다. 불로소득이 많아지면 사회 전체에 손실을 불러오고, 경제가 어려워진다. 사회 구성원 간 동질성을 해치고, 위화감을 부른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형 개발사업을 삐딱하게 본다. 이에 동조는 사람은 늘어만 간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부동산 졸부들의 꼴불견이다. 사돈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게 우리네 사람들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땅값에 끼인 거품이 걷혀 불로소득자들과 부동산 졸부들이 ‘폭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렇게 되면 거품이 잔뜩 낀 부동산을 담보로 이자놀이를 즐기는 금융기관들까지 쓰러질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작년 말 기준 제주지역 가계 대출은 11조3000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3조1000억원(38.9%) 늘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투기장 제주의 민낯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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