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길을 걷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6.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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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하귀일초등학교장 / 수필가

[제주일보]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퇴직하면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것이다. 장장 800㎞를 걸어야 하기에 건강이 뒷받침 되어야하고 무엇보다 두 다리가 튼튼해야 가능한 일이다. 주변에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발에 물집이 생길 정도로 고생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자꾸 흘렀단다.

아마도 살아온 길과 살아갈 길에 대한 입맞춤, 아니면 내 안의 숨어있던 또 다른 나와의 만남에서 오는 회한과 감동의 눈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제주의 올레 길을 낳고, 그 올레 길은 우리나라 각 지역의 또 다른 길들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길이 길을 만들었듯이 길에서 사람들은 길을 찾는다. 그 길들은 절망에 빠진 누군가를 희망으로 이끌어주기도 하고 상처를 치유해 새 삶을 살게도 한다. 길은 누군가가 지나가면 또 다른 누군가를 기다리며 항상 손 내밀 채비를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을 찾고 함께 걷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일 지라도 각자의 삶이 다른 만큼 그 길에 새겨진 의미도 다르다. 길을 걷는 일은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며 그 삶에 나름의 희망을 입히는 작업이다.

우리나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버금가는 해파랑길이 있다.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부터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기까지 총10개 구간 50개 코스로 나누어져 있는 770㎞에 이르는 동해안 길이다.

지난 연휴를 이용하여 해파랑길 부산구간을 걸었다. 걸으면서 만났던 경관들이 아직도 아른거린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시작되는 1코스 길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비록 해맞이는 못했지만 스카이워크의 전망대를 돌아 푸르고 깊은 동해물을 보며 걷는 한걸음 한걸음은 자연에 대한 감사와 우리나라에 대한 애틋함이 저절로 우러나게 했다.

우뚝 솟은 바위도 그렇게 의젓해보였고, 푸르른 나무들도 더 이상 싱그러울 수가 없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사랑스러웠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의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 구절을 속으로 불렀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우리나라를 어찌 아끼지 않을 수 있으랴.

도보여행은 맛 기행하기에 딱 좋다. 배고픔 앞에서는 한시도 못 참는 남편은 웬일인지 돼지국밥집 앞에서 줄을 선다. 기장에서 유명하다는 짚불장어구이 집에서는 그동안 함께해 온 부부의 시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해산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삶의 에너지를 얻고 걷다 보면 해수욕장이 나오고, 카페가 줄을 잇는다. 아직 개장하지 않아도 젊은이들은 서핑을 즐기고 있다. 그들을 보며 해안가 커피 한잔만으로도 감성충전은 그만이다. 다시 걷는다. 둘이 나란히 출발했어도 걷다보면 나란히 걸을 때는 거의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 든든하다. 뒤쳐지면 좀 더 힘을 내고 너무 앞선 것 같으면 기다려 주는 게 부부인생 아니던가. 아직까지도 그렇게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러길 희망해 본다. 바닷장어 회와 구이를 앞에 놓고 서로 격려하는 잔을 맛 댄다.

다녀오자마자 다음 울산구간을 걷기로 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설렘도 희망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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