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사는 교육
죽어야 사는 교육
  • 제주일보
  • 승인 2017.05.2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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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제주일보] ‘행복한 가정의 사는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이유로 불행하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작품 중에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으로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불멸의 문장이다.

저마다 살아온 삶 속에서 행복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문장으로 출판사마다 번역이 다르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해석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데에는 특별히 필요한 것이 없으며, 불행해지는 데에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온갖 이유로 불행해진다’ 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러시아 상류 귀족사회의 귀부인 안나의 삶을 통해 불행을, 레빈의 삶을 통해 소소한 삶의 행복을 묘사한다. 타고난 미모와 교양을 갖춘 안나는 귀족이며 고위 관료의 아내였지만 명문 귀족출신으로 상류사회의 핵심 인물이며 미남 청년 장교 브론스키를 만나면서 격렬한 사랑의 소용돌이 빠져든다. 안나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하지만 사랑의 속성인 집착과 소유욕에 빠져들게 되고 정작 브론스키의 마음은 사랑에서 사회적인 출세욕으로 옮겨가면서 두 사람의 삶과 사랑은 파국에 이른다. 반면 안나에게 사랑을 빼앗겼던 키치와 브론스키를 짝사랑하는 키치로 인해 실연의 아픔을 겪었던 레빈은 목가적인 시골 생활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키치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았던 덕에 사랑도 얻는다.

안나는 상류계층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았고 사랑을 얻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행복이 돈과 명예 심지어 사랑을 쟁취했다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며 행복은 레빈과 키치처럼 소소한 삶 속에서 순간순간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우리 모두는 안나의 삶을 꿈꾼다. 부모로서도 우리 아이들이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가 안나의 삶처럼 살기를 바란다. 더욱이 요즘에는 계층의 사다리는 오르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그 아득한 끝을 알 수 없지만 달리 길이 없다고 여기며 우리 아이들을 무한 경쟁으로 내 몰고 있다는 점에서는 학교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은 계층의 사다리를 오르느라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며 희생하고 있다. 인생 백년을 준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소년기의 잘못된 교육은 우리 아이들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한다.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전에 글자를 가르쳐 그림책을 보는 아이의 상상력을 강탈하고 선행학습으로 많은 지식을 주입하느라 지능의 성장을 방해한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인성교육은 뒷전이다. 아이들은 자아정체감을 형성시켜야 할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열공·닥공(닥치고 공부)에 밀려 자신에 대해 고민하거나 표현조차 못해보고 어른이 된다. 부모나 교사나 우리 청소년들을 불완전한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교육환경에 대해 시인하면서도 아무도 개선하려 들지 않는다.

그 동안 우리사회는 ‘학력’과 ‘재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로 소위 말하는 개천에서 용나는 것이 불가능해 지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세상은 현실적이어서 점점 학력을 믿지 않게 됐다. 시선을 돌려 선진 국가를 살펴보면 ‘실력’과 ‘매력’이 ‘학력’과 ‘재력’을 이기는 흐름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 확연히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특목고를 폐지하고 고교내신과 수능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는 것이 유력하다고 한다.

경쟁의 완화를 통해 우리 아이들의 ‘실력’과 ‘매력’을 성장시킬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다.

톨스토이는 주인공 안나를 절망감에 가득한 채 철로에 뛰어들게 하여 냉정하게 죽인다. 한때 자신이 귀족신분이었던 톨스토이는 안나를 통해 50세 이전의 자신의 모습을 죽이고 레빈의 모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간 것이라 한다.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아도 대입경쟁에 매몰되었던 우리의 교육이 이번에는 확실히 죽어서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제주일보 기자  isuna@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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