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빼고 뼈다귀 빼고 또 뭐 빼면
기름 빼고 뼈다귀 빼고 또 뭐 빼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5.2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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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세상의 인품에는 다섯 등급이 있다. 선한 말(言)을 받아들이지 않는 질새(窒塞), 선한 도를 스스로 깨닫는 통달(通達), 큰 말은 받아들이지 않고 작은 말에만 귀 기울이는 소기(小器), 작은  말은 버리고 큰 말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대기(大器), 큰 말을 들어 크게 쓰고 작은 말을 들어 작게 쓰는 불기(不器)가 그것이다”

19세기 실학 개화사상을 폈던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1877)는 저서 ‘인정(人政)’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 즉 ‘치인술’을 논하면서 세상의 인품을 이렇게 다섯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사람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질새’에 속하는 사람인데, 이들은 부귀빈천 등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선한 말을 듣지 않는 부류다. 한 마디로 ‘꽉 막힌 사람’들이다.

그 다음으로 많은 ‘소기’는 편벽된 소견을 가지고 간신히 제 몸을 보전하는 데만 바쁜 사람을 말한다. 그 다음이 ‘통달’이다. 이 부류는 견식이 막힘이 없고 언론이 분명하며, 일을 하는 데도 빈틈이 없고 이웃사람들과도 화목하게 지낼 줄 안다. ‘대기’는 드물지만 이들은 큰 일을 맡고 큰 업을 이루는 일은 감당할 수 있다.

도덕과 재능이 뛰어난 ‘불기’의 사람은 천하에 구하기가 쉽지 않고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가려내기조차 어렵다.

▲‘인정’은 정치의 요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인재를 골라 쓰는 방법에 심혈을 기울여 왕이라도 전횡할 수 없는 제도를 확립해 놓았다.

조선왕조에서는 인사행정을 일컬어 ‘도목정사(都目政事)’라고 했다.

이조와 병조의 인사 전형위원회에서 적격자 3명을 선발한 뒤 왕에게 올리면 왕이 최종적으로 한명을 낙점하고 이를 오늘날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조보(朝報)’에 공표한다.

공표했다고 곧바로 관직에 취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직후 이조와 병조에서 해당자의 친족·외족·처족 등 3족의 부·조·증조·외조의 명단을 사헌부와 사간원에 보내 결격 사유의 유무를 판정받아야 했다.

이런 절차를 ‘서경(署經)’이라 했는데 서경을 통과한 사람이어야만 취임을 승인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서경’에 걸려 고위직에 나가지 못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수없이 많다. 조상들의 잘못 보다는 자신의 탐학이나 음욕이 문제가 된 것이 더 많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뇌물로 들깨 한 섬, 쌀 두 말 닷 되를 받았던 것이 화근이 됐던 인물도 있다.

▲새정부의 ‘인정’은 출범 초기 국민들의 감동을 살만했다. 문재인 대통령 주변의 측근 실세들의 자진 퇴장이 그 시작이었다.

대통령도 자신을 위해 오래 헌신한 사람들을 국정의 주요 자리로 대동하지 않았다.

이런 것들은 마치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명재상 서수(犀首) 공손연(公孫衍)의 의기(義氣)를 생각케 한다.

서수는 이렇게 말했다.

“의리는 줄지어 나는 기러기와 같고, (인사) 차례는 꼬치에 꿴 물고기와 같으면 어찌 올바른 인사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의리를 내세워 자기 편만 조정에 끌어들이는 인사를 비판하는 말이다.

새 정부의 ‘인정’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 때 말한 인사원칙과 다르다는 식언(食言) 논란에 휩싸였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까지 위장전입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경우는 과거의 경우와 달리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위장 전입한 것이 아니라 자녀 취학과 전학을 위한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위장전입인 것은 맞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과거 정부의 집권초반에 인사실패로 일어났던 국정 동력상실이 재연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혜강은 23년 동안 연구 끝에 내놓은 저서 ‘인정’에서 ‘불기’ ‘대기’ ‘통달’ ‘소기’ ‘질새’의 순으로 인품의 등급을 매겨 놓았다.

특히 그는 경력과 경륜, 학식보다 사람이 갖고 있는 기품(氣品)이나 심덕(心德)을 중시하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새 정부가 고위공직자들을 임용할 때, ‘불기’ ‘대기’의 인물을 뽑기는 어렵다고해도 ‘통달’의 정도는 뽑아야겠는데…. 어쩌랴. 이런 저런 원칙에 맞추어 기름 빼고 뼈다귀 빼고 또 뭐 빼고 하다 보니 인물은커녕 할 사람이 없는걸.

인물을 뽑으려면 사람 보는 안목이 높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전에 인사 원칙이란 것을 제대로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거는 되고 저거는 안 되고 식으로 시시콜콜 원칙을 세워 그에 맞추려할 것이 아니라, “기품과 심덕” 정도로 포괄적으로 보고 능력에 대한 판단은 인사권자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을까. 기품과 심덕은 바로 인품으로 직결된다.

인품만 보면 된다.

과거 정부에서 보았듯이 시시콜콜한 정치적 검증으로 얼마나 많은 국가의 인재들이 불명예를 안고서 세상에서 추락했나.

이젠 바뀔 때도 됐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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