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자리돔들은 왜 떠나야만 했을까
그 많던 자리돔들은 왜 떠나야만 했을까
  • 제주일보
  • 승인 2017.05.2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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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날씨가 무덥다. 올 여름은 일찍 찾아오려나 보다. 뜰 안의 장미꽃은 아직도 빨간 자태를 보이고 있는데, 더위는 한여름 수준이다.

달포 전에 아들을 낳아 무척이나 바쁜 장남이 찾아왔다. 장모가 우리에게 주라고 했다면서 흰 비닐봉지를 건넨다. 어른 주먹만큼이나 큰 활소라다. 삶거나 구워 먹을 수도 있지만 물회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망치로 생 소라를 깨고 머리 부분을 손질하여 썰어 놓으니 제법 먹을 만하다. 텃밭에서 미나리, 쪽파, 산초잎을 따서 씻어 넣고, 양파를 잘게 썰어 담근 된장에 빙초산을 몇 방울 떨어뜨리니 소라물회가 완성되었다.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으나 물회는 종종 먹는다. 무더운 날씨에 제주에서 물회를 먹는 것은 미식가들의 식도락 중 하나일 것이다.

보리자리물회는 유명하다. 자그마한 크기의 자리가 돔이라는 고급 신분으로 상승할 수 있었던 것도 보리자리와 가을날 참깨로 굽는 모슬포자리의 향내일 것이다. 소싯적, 장마가 드리우기 전 황금 들녘의 보리밭은 아버지의 근심거리다. 다섯 말 지기 보리를 베어야 했다. 주말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보리를 베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중에는 두 노인들만 일을 해야 하니 열흘은 족히 걸리는 농사일이다. 점심시간이면 으레 숟가락으로 듬성듬성 깎아 낸 물외, 집에서 준비한 자리, 구수한 된장, 빙초산으로 버무린 다음 산초잎을 넣으면 그만인 자리물회다. 얼음이 없어도 시원한 그 국물은 한 여름날 보리밭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가을이면 어떤가. 어른 손바닥 만한 자리가 한 움큼의 참깨고초에 구울 때 지글지글거리는 냄새는 고소함 그것이다. 참깨 기름이 속속 밴 자리의 검댕을 훌훌 털어내고 입 안으로 넣으면 그 향내는 그윽하다.

자리돔은 제주인들과 일생을 동락했던 어종이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보이질 않는다. 오래전부터 터를 두고 살았던 갈치나 고등어들도 근해에서 사라져 자리들과 같이 제주바다를 떠난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보면 조상대대로 살아왔던 터전을 버린다는 것인데, 그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물질적 탐욕에 빠져버린 것이 아닐까. 경제적으로 우리들의 삶은 과거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나아졌다. 굶주림에 허덕였던 지난날은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것만이 아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주변 환경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교만에 빠져버렸다. 관광산업에 효과가 있다면 무엇이든 속전속결 처리하지 않았던가. 해안을 매립하여 조성된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호텔, 처리 용량이 부족한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흘러나오는 폐수, 밀려드는 관광객의 증가로 인한 제주의 자연·인문환경은 변화를 거듭했다.

해안 생태환경은 파괴되고, 환경 보전이라는 말에 냉갈령을 부리며 사람들의 정은 메말라갔다. 제주의 어종들은 산소가 부족한 어항의 금붕어처럼 헐떡거리다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우리들의 탐욕이 그들을 쫓아낸 것이 아닌가 싶다.

소박 당한 모습으로 떠난 자리돔은 어디에 있을까. 몇 해 전 독도를 여행하는 길에 울릉도에서 이틀을 지냈다. 첫날 밤 뱃길에 지친 아내와 함께 밤바람 쐬러 선착장으로 나갔다. 밝은 조명등이 비치는 바닷물 속에서 하얀 반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하나둘이 아니라 무리지어 다니는 모습이 하늘에서 새들이 추는 군무처럼 보였다. 자리돔들이다. 반가웠다. 제주에서 소박 당하고 이곳 울릉도에 터를 잡았던 것이다. 제주는 자리돔을 잃어버렸다. 다시 찾고자 해도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곳이 그들의 생존 터가 됐기 때문이다.

이제 제주인들은 육지에서 수입된 냉동 자리를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얼마나 잃어버려야 그들의 귀중함을 알까.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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