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작물로 자생력 쇠퇴...백년대계 도모할 때
정치작물로 자생력 쇠퇴...백년대계 도모할 때
  • 강민성 기자
  • 승인 2016.01.03 1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 위기의 감귤산업

▲정말 지긋지긋한 비다.

11월 들어서부터 최근까지 땅이 마른날이 거의 없었던것 같다. 가을추수로 연말을 잘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계획하는, 어쩌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 아니라 새해를 계획해야 되는 시점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잦은 비 날씨로 방제 시기를 놓쳐버린 월동작물들은 수확을 못한 채 버려지고 있다.

더구나 감귤 수확이 평년대비 73%밖에 출하하지 못해 농촌경제는 침체일로의 길을 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감귤 저급품 1㎏에 160원씩 보전해주는 산지폐기정책을 제시했다.

“저급품이라니? 저급품이 뭡니까? 누가 저급품이라고 합니까? 저급품이아닙니다. 우리의 피눈물입니다.”

분노 서린 눈빛에는 절망감이 어렸다. 감귤농업인 오모씨가 내뱉은 절규다.

제주도를 찾는 내·외국인 관광객은 연말까지 1350만명을 초과 할 것이라고 한다. 대단한 성과다. 더불어 제2공항 건설이라는 호재로 제주도의 미래가 장밋빛처럼 미화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제주도 농업의 제1작목이자 제주도의 지역내총생산(GRDP)를 견인해왔던 감귤산업은 ‘아사 위기’에 직면했다.

감귤을 수확하는 대부분의 노동력은 할머니들 차지다. 수확 시기를 놓치면서 산남과 산북이 한꺼번에 수확을 하다보니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지역적으로 노동력 1인당 일당 6만~7만원, 점심과 간식을 포함하면 하루 7만~8만원의 인건비가 쓰인다.

보통 한사람이 500~600㎏정도 수확한다고 하니, 감귤 1㎏ 수확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최저 133원에서 160원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제주도는 1㎏당 160원을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황당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감귤나무의 수세 회복을 위해서는 나무에 매달린 감귤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할머니들은 가공용 감귤을 출하하기 위해 집하장마다 이틀에 한 번씩 새벽 6시부터 줄을 서 기다린다. 600㎏을 출하하기 위해서, 그마저도 감지덕지 하면서….

이제 저급품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산지폐기를 하잔다. 시장과 격리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가지고….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감귤 수확기에 잦은 강우로 이런 상황을 맞았다고 ‘하늘 탓’이란다.

하늘 탓이 맞다면 이는 ‘재해’다. 재해가 맞다면 제주는 재해지구로 선포돼야 한다. 하지만 제주도정은 겨우 ‘저급품(?) 산지폐기’가 대안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감귤산업이 제주도의 새로운 산업 형태로 가능성을 보이며 제주도의 상징으로 부각된 역사가 50여 년. 제주도 지역총생산의 효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준비했는가. 아니 무엇을 준비할 수 있었는가.

농업인들은 대학나무라는 자아도취에 빠져서 마르고 닳도록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소비자의 트렌드를 이해하는데 안일했고, 생산자 단체인 농·감협은 그들의 조직을 비대하게 하기 위해 출하 수수료와 영농자재 판매 등으로 소득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행정도 ‘정치작물’이 돼 버린 감귤산업에 대해 그때그때 농업인들을 달래는 미봉책으로 일관해 왔다.

행정이 개입되는 감귤농업은 농업인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기초체력 다지기와 자구력·자생력을 상실케 만드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물론 다양한 형태의 시설재배, 만감류로의 품종 갱신 등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지만 향후 20년 뒤에도 지금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기가 반복되고 있음에도 농업인들이 가장 의지해야 할 생산자단체는 그동안 무엇을 해 왔던가. 감귤이 전국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과일임에도 불구하고 감귤을 원재료로 하는 가공품을 만들어 낸 것이 무엇이 있는가.

늦은감이 있지만 생산자단체가 나서야 한다. 자금, 인력, 노하우, 하나로마트라는 시장,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

대한민국 과일생산 1위라는 입지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변변한 가공시설하나, 제대로된 제품개발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농업용 자재를 공동 구매라는 명목으로 농업인들에게 적정(?) 수수료를 부가해 판매 하지만 공동 판매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다. 더 이상 거론할 필요없는 제주도 생산자단체의 자화상이다. 비단 감귤 뿐만이 아니라 월동채소, 밭작물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빅 데이터를 활용해 예측가능한 서비스를 제공 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다양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예측가능한 영농이 되도록 해야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는 시행착오를 더 이상은 용서해선 안된다.

미국·중국과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서 감귤이 보호작목이 되면 당분간 숨을 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감귤보다 더 당도가 높고 신선한 수입산 과일이 대형마트나 백화점 심지어 노상 가판대까지 점유하고 있다. 이제 과일가게에서도 감귤은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이제부터라도 시작하자.

생산자단체가 주어진, 제한된 시장에, 한정된 생산을 유도할 것이 아니라 잉여 농산물을 활용한 제대로 된 가공품들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지방정부와 지방개발공사 역시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지사가 수도권 도매시장에서 며칠씩 판촉을 한다는 어이없는 행정을 펼것이 아니라, 제주도 농업 100년 대계를 논의해야 한다. 농업인, 생산자단체, 지방정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많은 학습을 통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필자를 포함한 우리 농업인들도 진실한 자기성찰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갖춰왔는지, 어려움에 봉착할 때 행정에 기대는 것을 습관처럼 해 오진 않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위기는 오히려 우리 모두를 더욱 강하고 치밀하게 만들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제주도의 힘이니까.

42.195㎞의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기초체력뿐만이 아니라 지구력, 인내력, 극한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된다. 진정 우리가 바라는 것은 ‘農村(농촌)’이 ‘膿村(농촌)’이 되어서도 안되는 것이고, 또 우리의 ‘農心(농심)’이 ‘膿心(농심)’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는 것이다.

강민성 기자  kangm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