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거짓말
하얀 거짓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5.23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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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제주일보] 애꾸눈 왕이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고 싶어서 전국의 유명 화가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 중에는 아부를 잘하는 이도 있었고 고지식한 이도 있었다. 아부형 화가는 왕의 두 눈을 정상처럼 멀쩡하게 그렸고 고지식한 이는 애꾸눈을 또렷하고 정확하게 그려냈다. 당연히 임금님은 둘의 그림에 퇴짜를 놓으며 거짓으로 그린 이와 정직한 이에게 불호령을 내리며 쫓아냈다.

전자는 보기엔 좋지만 가짜라 마음에 안 들었다. 고지식한 화가의 그림은 애꾸눈이 보기 싫어 퇴짜를 놓았다. 그때 소박한 한 남자가 자신이 한번 그려보겠다고 했다. 임금은 마뜩찮았지만 허락했다. 한참 뒤에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던 임금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화가는 왕의 옆모습을 그렸다. 얼굴의 단점을 잘 감춘 초상화였다. 사진을 찍을 때 흔히 쓰는 방법인 아웃포커스인데 이건 목표물만 선명하게 나타내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처리하는 기법이다. 일종의 하얀 거짓일 수 있다. 거짓말에도 성질이 있다.

탈무드에 보면 경우에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미 사버린 물건에 대해 의견을 물어왔을 때는 비록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훌륭하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고 친구가 결혼했을 때는 ‘미인을 얻으셨군요’라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다. 상대방을 위한 괜찮은 거짓말의 예며 활기를 북돋아주는 힘이 있다.

우리는 한동안 나라가 휘청할 만큼 정치적으로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대한의 국민들은 의연하게 5월 9일, 19대 대통령을 청와대로 입성시켰다. 대통령은 우리 삶에 즉각적이고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대충 선택한 대통령이 아니지 않은가. 이왕 뽑혔으니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릴 인물이다’라는 믿음으로 바라보자. 여느 나라 정상들에 비해 뒤지지 않을 새롭고 진보적인 대통령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하얀 거짓의 최면을 걸어보자. 왕의 단점을 커버해 옆모습의 초상화를 그린 소박한 화가처럼 새로운 대통령의 장점을 부각하며 박수를 보내자.

국민이 믿음과 성원을 보내야 한다. 누굴 뽑더라도 알아서 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알아서 잘하길 기대하는 순간 그는 무능한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주인 의식을 가지고 대통령이 나라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주권자의 권리를 위임할 사람을 선택한 우리의 책임이다. 주인인 우리가 부추겨줘야 한다.

버락 오바마는 퇴임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여러분이 나를 더 좋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며 국민들을 치하했다. 성공한 대통령의 탄생 여부는 우리 손에 달렸음을 의미함이려니. 애꾸눈 왕의 단점을 감추고 장점을 살려준 소박한 화가처럼 우리도 우선은 하얀 거짓의 마음으로 다가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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