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는 이에게
길을 찾는 이에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5.18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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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관장

[제주일보] 누구나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해서 살아갈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삶의 여정이란 말이 있는 것이겠지요. 저도 쉰을 훌쩍 넘긴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언제나 길을 찾았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가르침이나 충고를 열심히 들어보려고 애도 썼지요, 그러나 무조건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지금까지 오면서 큰 탈 없이 살아왔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안절부절 애타는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네요. 그런데요, 돌아보니 힘듦만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호흡이 잘 맞고 좋은 귀감이 돼 주는 친구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흔히들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일이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겠죠? 대학시절, 저는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갈증을 많이 느끼던 그 시절, 함께 연극공부를 하고 작품 연습하며 끊임없이 토론하던 그 때는 정말 연극에 미칠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이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새로운 걸 알아간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잖아요. 물론 신나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연극 때려 치우라는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땐 몰랐습니다.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 천직인지를요. 숙명인지를요. 처음 시작할 때 연극의 재미를 알게 해준 친구들 덕인 것 같습니다.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막내아들이 올해 대학을 갔습니다. 아들이 자라면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영화 보는 것이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영화 전공해 보라고 권했고 심사숙고하더니 관심이 간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대학에 거뜬히 합격해서 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대학생활 한 달도 안 돼 재미없다고 하네요. 진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구요. 책에나 나옴직한 말로 아이를 달랬습니다만 곰곰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울컥했습니다. 예술을 하면서 적당히 둘러대고 치장만 해 온 건 아닌지 부끄러웠습니다.

제 뒤를 따라오는 후배들에게 좋은 이끔이인가를 자문하게 되더군요.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길을 만드는 선배가 돼야겠습니다. 아니 함께 동행하는 동료가 되겠습니다. 아들에게도 성공을 바라는 엄마가 아닌 예술을 하는 선배로서 현명한 조언을 해줘야겠어요. 상처가 아물었을 때 더 단단해지고, 도전을 이루었을 때의 그 성취감은 그 어떤 보상보다도 달콤할 것입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안전한 길로 가고 싶었나 봐요. 여태 남에게 나의 길을 묻고 달려왔더라구요. 그것도 이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에게, 잘 나간다는 사람에게 말이지요. 무모한 모험이나 가망 없는 도전은 되도록 안하려는 속셈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느라 전념할 수 없었다고 변명만 늘어논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니 그 젊었던 그 시절, 연극을 처음 시작했던 그 시절의 나는 없고, 예전의 열정이나 패기는 사라지고 변해서 살만 뛰룩뛰룩 찐 아줌마로만 남은 것 같아 울컥했습니다.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늦지 않았겠지요, 아직 20~30년은 남았으니 더 고민해도 되겠지요?

이제 아들처럼 길을 찾는 이들에게 해줄 말이 생겼습니다.

‘인생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게 만족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그게 중요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다. 가치관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고급지고 비싼 것이다. 좋은 자동차, 화려한 집은 수단일 뿐 궁극적인 가치가 될 수 없다. 누가 그런 가치를 내게 줄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남들은 내게 방향을 가리켜 줄 뿐 이런 가치는 스스로 추구하고 체험해야 한다. 누구든 제 힘으로 남들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인생의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 예술은 지금의 현실에선 더 어려운 길이다. 허나 그 가치는 더 값진 것이니 힘들어도 앞이 안보여도 도전해보라. 함께 가보자.’

실로 간만에 어른다운 말을 했나 봅니다.

여름이 오는 어느 날….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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