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를 지워가는 서귀포
서귀포를 지워가는 서귀포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5.1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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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사이로/ 바다가 출령이고/

바다 위론 똑딱선이 미끄러지더이다./

기인(畸人)을 허락하지 않던 시대에 기인으로 살다간 서귀포 사람. 고(故) 김광협 시인이 고향을 담은 ‘유자꽃 피는 마을’ 시의 일부다.

서귀포 70리로 상징되는 서귀포는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시인의 표현처럼 5월이면 하얀 귤꽃이 마을을 하얗게 물들이고 그 은은한 꽃향기는 온 마을을 감쌌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요즘 서귀포 중심 거리엔 자욱한 미세먼지가 사방을 뒤덮고 그 가운데를 ‘도시냄새’가 떠다닌다.

북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싼 한라산과 건물 사이로 간간이 보이는 남쪽의 섶섬 문섬 범섬 등이 없으면 영락없이 평범한 중소도시의 모습이다. 제주로의 귀농·귀촌 열풍에 힘입어 서귀포 인구가 18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4월말 서귀포시 인구는 18만507명을 기록했다. 지난 연말보다 2642명 늘었다. 하루 평균 22명이 인구가 늘고 있다.

2010년 제주로의 귀농·귀촌 열풍이 불기시작하면서 서귀포 인구는 증가세로 돌아섰다. 2014년 4월 16만명을 돌파한 뒤 2015년 12월 17만명을 돌파했다.

 

#급격한 팽창 본래모습 퇴색

서귀포 인구가 이처럼 증가하는 원인은 ‘자연적 내부요인’이기보다 다분히 ‘인위적 외부요인’에 기인한다. 타지방에서 밀려드는 귀농·귀촌이다. 서귀포 인구가 늘어난다는 점은 분명 반길 일이다. 서귀포지역은 제주에서도 상대적으로 고령층이 많은 곳으로, 인구 증가는 곧 지역의 역동성을 끌어 올리고 경제력을 확장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한 도시의 팽창은 서귀포를 다른 모습으로 끌어가고 있다.

급변하는 서귀포 실상은 서귀포시 제 1청사 북쪽 일대를 보면 단번에 확인 된다. 지금의 서홍동주민센터 인근에 있는 흙담솔 군락지는 과거 이래로 서귀포의 상징이다. 이 흙담솔은 서귀포시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고 있다.

구한말이던 1910년 쯤 이곳 서홍동 일대에선 화재가 자주 발생했다. 마을 앞이 너무 트여 화재가 많은 것으로 여긴 주민들이 그 허실한 데를 막아보자며 심은 게 바로 흙담솔 소나무다. 서귀포 동서를 하나로 연결하는 거대한 ‘소나무 담’이다. 그렇게 100년 넘게 버텨온 이 ‘소나무 담’이 지금은 위태롭다. 인근에 대형 건물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면서 이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기 때문이다.

걸음을 옮겨 읍·면이나 해안가로 들어가면 건물을 지을 만한 곳엔 죄다 별장형 건물들이 들어섰고 육중한 철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 같은 현상은 산북으로 상징되는 제주시 지역도 예외가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지향해야

도시화가 상당부문 진행된 제주시와 달리 서귀포의 급격한 도시 팽창은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서귀포 지역 또한 치솟는 건물 임대료와 집값은 물론 쓰레기 처리 난과 교통체증이 일상화 됐다. 하수처리장도 한계상황이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서귀포 인구는 조만간 20만명을 돌파한다. 그러면 더 많은 곳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파헤쳐진다. 1990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정은희 제주문화교육연구소장. 그는 최근 제주에서 겪고 느낀 삶을 담은 ‘제주 이주민의 역사’를 발간했다. 그는 “지금 제주 인구가 60만명이 조금 넘는데 앞으로 100만명이 되면 과연 그때에도 제주도민들이 행복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도 쓰레기에 교통난에 난리인데 한정된 땅에 사람들을 자꾸 끌어들이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따뜻하고 소박한 인정, 여유롭고 느긋한 동네, 많은 예술가와 문화유적을 간직한 예향(藝鄕)의 도시. 서귀포의 상징처럼 각인 된 옛날로 가기는 불가능 하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서귀포를 간직하려는 노력은 뒷전에 둔 채 서귀포를 지우는 길로 뜀박질해선 곤란하다.

경제논리에 의한 개발도 필요하지만 서귀포를 지우는 인위적 팽창은 서귀포를 지속가능한 발전의 도시에서 멀어지게 하는 길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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