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그 이후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그 이후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5.14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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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영화배우 유지태의 할아버지인 고(故) 유옥우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당 공천으로 전남 무안에서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가 국회에서 폭로한 이른바 ‘이승만 대통령 방귀사건’(1956년)은 두고두고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의 발언은 이렇다.

“이승만 대통령이 광나루에서 낚시를 하던 중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익흥 내무장관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하고 아부(阿附)했다는데, 그런 사람이 대통령을 보필하고 장관 노릇을 하면 대한민국의 명의(名義)가 서겠는가!….” 당시 시중에서는 이 장관이 일제시대 고등계 형사 출신인데 이 대통령에게 아부해 출세 가도를 달린다는 얘기가 회자될 때였다. 이 장관이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지만 1956년 8월 1일자 국회 속기록엔 아직도 그 발언 내용이 남아있다.

이 사건 이후 유 의원은 집권 자유당을 떠나 민주당으로 옮겨 4·5대 의원, 다시 신민당 8대 의원, 11대 민한당 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는 아부의 대명사가 됐다. 아부에 관해서는 제주도에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제주에 왔을 때 술자리 심부름을 하던 공무원 A씨가 있었다. 박 대통령이 수행원들과의 술자리가 한참 익어가자 술안주를 나르고 있던 A씨를 불렀다.

“자네도 한잔 하게.” A씨가 납짝 엎드려 “각하 감읍하옵니다.” 하고 술잔을 받았는데 손을 부들부들 떨어서 받은 술잔의 술이 반이나 쏟아졌다. A씨가 당황해서 대통령 앞에 엎드린 채 울상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괜찮다”며 그를 물러가게 하고 수행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주도에 저런 착하고 순박한 공무원이 있다니….” 곧 특명을 내려 승진시켰는데, 나중에 A씨는 제주시장까지 출세 가도를 달렸다.

그런데 사실은 A씨가 순박해서 권력자 앞에서 벌벌 떤게 아니라, 평소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손을 떠는 수전증(手顫症)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부엔 이렇게 원색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어느 환갑 잔칫집에 들러 시를 한 수 읊었다. ‘저기 앉은 저 늙은이 사람같지 않구나(彼坐老人不似人).’ 이 말을 들은 노인의 아들들이 분기탱천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김삿갓이 태연히 다음 구절을 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도다(疑是天上降眞人).’ 이런 아부에 노인의 아들들은 떡 벌어지게 한상을 차려 김삿갓을 대접했다던가….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아부는 상사를 춤추게 하니까. 그래서 아부에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아부를 훌륭한 처세술,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책도 여럿 나왔다. 그런데 아부는 인간관계는 물론 국가도 망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리어왕>은 아부에 눈이 먼 리어왕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런 악명에도 불구하고 아부의 역사가 시대를 넘고 넘어 건재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진실보다 위안을 더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부는 참으로 무섭다. 소크라테스 말대로 ‘생사람을 잡아먹기’도 하고, ‘한 나라를 망쳐먹기’도 한다. 권력자에게 알랑거리며 직언을 방해하는 사람, 맹목적 충성심만 강요하는 사람, 공익을 빙자해 사욕을 채우는 사람 등이 그런 부류라고 했다. 아부가 활개치는 곳은 아무래도 권력의 주변이다.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 다음 달 3·1절 기념사에서 “참여정부에서는 권력에 아부하는 사람이 더 이상 설 땅이 없을 것”이라며 권력 주변의 아부를 경계했다. 그런 그도 박연차 회장과 관련한 의혹의 과(過)를 남겼다.

우리는 지난날 권력 주변의 숱한 아부꾼들을 보았다. 최순실 뿐이랴. 권력을 이용해 부패를 저지르고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경험했다. 역대 정권의 권력자들이 그들을 어쩌지 못했던 건, 아부란 것이 인간의 약한 속성에 기생하는 까닭이리라.

제19대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다. 그는 아부꾼들을 멀리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을 실현할 수 있다면 그 하나만으로도 문재인 정권은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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