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운 나라’
‘나라다운 나라’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5.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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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제19대 대통령선거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10월 이후 말로만 떠돌던 대통령 주변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게이트의 실체가 양파껍질이 벗겨지듯 백일하에 드러나면서 들불처럼 번진 ‘촛불민심’이 대선정국을 열었고,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여망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귀결됐다.

▲이번 대선의 결과는 헌정 사상 처음 이뤄진 현직 대통령 파면에 대한 국민의 신임이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선고에 불복해 여전히 태극기를 앞세우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시 한 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대선 레이스에서도 후보들 가운데 일부가 노골적으로 헌재의 결정을 희화화(戱畵化)하면서 도도한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려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색 바랜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며 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상대후보의 기표란에 인공기를 그려 넣은 홍보물을 내놓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대한민국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막말과 비행(卑行)까지도 마치 ‘강한후보다움’으로 치부하려 했다.

그렇지만 현명한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음습한 시도에는 거부권을 분명이 밝혔다. 정권 연장을 시도하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시도를 투표라는 가장 강한 무기로 제지했다.

▲이번 대선은 우리 정치의 민낯을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게 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국가의 지도자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게 했다.

거대한 ‘촛불민심’이 줄기차게 소리친 게 “이게 나라냐”였다. 대통령의 몇몇 비선실세들에게 농락당한 국가시스템에 대한 애도의 목소리다. ‘문고리’ 권력의 전횡을 방치한 무능한 대통령에 대한 준엄한 질책이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나라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분노의 표현이다. 세계의 웃음거리로 추락한 국격(國格)을 개탄했다.

박근혜씨가 역사에 남을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기대는 취임 초기를 넘기면서 접은 국민들이 많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들고,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지는 말았어야 했다.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꼼수’를 본 국민들은 그의 ‘그릇 크기’를 확인했다.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모습은 마지막까지도 끝내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의지는 결국 ‘나라다운 나라’로 모아졌다.

▲이번 대선은 절대 권력의 부패사슬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는 시대적 명제를 확인시켜줬다. 법치(法治)를 무시하는 행태도 묵인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보여줬다.

대선이 있게 한 대통령 파면의 가장 큰 사유는 결국 부패였다.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을 방치하고 자신이 직접 수백억원의 뇌물수수에 연루됐다는 것이 그를 구속하고 재판에 넘긴 검찰의 판단이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분출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경유착’의 중심에 섰다는 게 국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수치로 돌아왔다.

당연히 국민들이 요구도 깨끗한 대통령, 깨끗한 정부에 모아졌다.

밖에서 우리를 보는 외신들도 이번 대선은 ‘부패 스캔들을 끝내고 더 큰 정부 투명성과 민주주의 발전을 밀어붙일 중요한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파면과 대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보수의 적자(嫡子)를 자처한 이들은 대부분 헌재의 결정을 무시했다. 한 후보는 “헌재의 탄핵 결정이 잡범들에게 훈계하듯 했다”고 비아냥거렸다.

헌법의 보루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후보가 헌법의 결정을 부정하면서까지 진영의 지지를 구걸하는 행태를 국민들은 단호하게 심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통합과 협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많다. 맞는 얘기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적폐(積幣)의 청산 없이는 ‘나라다운 나라’는 어렵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걸 보여주고 있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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