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무덤’의 한(恨), 증손자 김유신의 멸사봉공
‘돌무덤’의 한(恨), 증손자 김유신의 멸사봉공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5.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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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서울제주도민회 자문위원 / 수필가

[제주일보] “이제야 내 백성들이 편안히 잘 살 겠구나.” 행차 도중 영산(靈山) 앞을 지나다 황혼의 농촌에서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산기슭을 덮는 광경을 보면서 만면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신라 법흥왕에게 선양(禪讓) 절차를 마치고 돌아가는 양왕의 심정을 표현한 것이다. 경남을 중심으로 김수로왕이 건국한 가락국(금관가야)은 491년(서기 42~532)의 사직을 지켰다. 양왕은 가락국 마지막 제10대 왕이다. 재위 12년(532년)에 신라군의 침공을 받자 낙동강 연안에 출전했다.

신라대군 앞에 가락군대는 ‘풍전등화’였다. 양왕은 번민만을 거듭했다. 군인과 백성들의 생명을 보전하는 것이 군왕의 도리라고 판단했다. 역사는 양민지도(養民之道)를 펼친 양왕의 정신을 높이 평가한다.

지난 4월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마을을 다녀왔다. 양왕과 계화부인의 위패를 봉안한 ‘덕양전’ 춘향(春享)대제에 참례했다. 인근 왕산 기슭 왕의 능소에도 올라가 참배했다. 능소는 ‘돌무덤’이다. 국내 임금 능(陵)이 돌무덤으로 축조된 곳은 양왕능이 유일하다. 양왕은 나라를 선양한 후 방장산(지리산) 자락 왕산으로 들어가 5년 여 은거하다 세상을 떠났다. 왕은 “나라를 보존하지 못한 죄인이므로 봉토는 하지 말고 돌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석능은 7단계로 축조됐다. 석능을 중심으로 둘레에 높이 1m 담을 쌓았다. 전면 중앙에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 비석이 서 있다. 왕릉은 사적 제214호로 지정돼 보존, 관리되고 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조정에서 제향을 모시도록 배려했다. 정조 11년(1798)부터는 양왕의 후손 종친회 주관으로 봄·가을마다 제례를 봉행하고 있다. 산청 일원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왕 무덤 위에는 새가 날지 못하고, 칡 넝쿨도 담장을 넘어 오르지 못한다”고 말한다. 왕의 음덕과 존엄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양왕과 계화부인 사이에 3명의 왕자를 뒀다. 장남 김 노종, 차남 무덕, 3남은 무력이다. 이들은 나라가 없어진 뒤 신라에 들어가 벼슬이 각간(角干)에 이르렀다. 가락국은 멸망했으나 그 왕족은 신라의 귀족 신분으로 대우를 받았다. 왕자 중 무력이 큰 공을 세웠다. 무력의 손자가 김유신이다. 곧 양왕의 증손자다. 신라에서도 가락의 후예들이 귀족으로 등용되고 화랑으로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김유신 장군은 가락인의 기개를 드높였다. 신라왕조에서 최고 지위인 태대 각간에 오른 김유신은 사후 162년 만인 신라 42대 흥덕왕 때 흥무왕으로 추봉됐다. 왕의 칭호를 받은 것이다.

경주시 충효동 송화산 기슭에 김유신 장군의 묘가 있고, 숭무전(崇武殿)에는 장군의 위패가 봉안돼 후손과 유림, 지역주민들이 모여 봄·가을에 향사를 지낸다. 김유신 장군이 머물렀던 병영지에 후손과 유림들은 사우(사당)를 지어 수백년 동안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고구려나 백제보다 후진국이었던 신라가 통일의 주인공이 되고 신라 문화가 빛나게 된 것은 가락의 선진기술과 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이다. 철기문화의 영향도 컸다. 철의 생산지가 가야지방이었고 그 야철지가 경상도 여러 지방에 산재해 있었다. 일본과 낙랑까지 무역을 했다. 당대 외교의 문장가 김강수와 가야금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게 한 우륵도 가야계의 인물이다. 이들은 신라 문명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했다.

김유신은 595년 충북 진천에서 각간 김서현 장군의 장남으로 태어나 673년 7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말을 타고 전쟁터로 나가는 길에 집앞에 잠시 멈춰 물 한 모금 떠오라고 했다. “아, 우리 집 물 맛이 예전과 같구나.”

김 장군은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걱정했다. 나라를 지키지 못한 증조부의 한(恨)을 ‘위국충절, 멸사봉공(爲國忠節, 滅私奉公)’ 그리고 애민정신을 실현해 청사를 더욱 빛냈다. 현세에 어느 누구에게서 그런 희생정신을 찾아볼 수 있을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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