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의 죽음
베니스에서의 죽음
  • 제주일보
  • 승인 2017.05.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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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수필가 / 제주문인협회장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라는 토마스만의 단편소설이 있다. 귀재라고 불리 우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 졌지만 원작에는 못 미쳤다. 토마스만은 이 작품을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 구스타퍼 말러를 모델로 해서 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말러의 교향곡 제5번 4악장이 깔린다. 순수, 비극, 비아냥, 죽음의 느낌이 묻어나오며 영화의 이미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준다. 청각적 효과를 각인시키면서.

그러나 작품의 기품과 격조는 역시 문장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 영상은 그것을 쫓아 올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광적 신봉자로서는 작가라는 설정보다 음악가가 더 어울렸는지도 모른다.

작품은 죽음을 앞둔 남자, 아셴바하의 생에 대한 집착과 파멸을 그린다. 아셴바하는 작곡가로서는 성공했지만 만족이 없었다. 공허했다. 자신의 음악을 몰라주는 아내와 친구들. 그리고 대중들의 몰이해에 지쳐 있었다. 단순한 쾌락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정신을 반영하는 음악. 그것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 그 갈증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베니스로.

예기치 않은 일은 얼마든지 생긴다. 여행지에서 그는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것도 손에 닿지 않는 상대.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상대.

그럼에도 그는 거기서 희망을 본다. 사랑을 하므로 두려움도 사라지고 명성에 대한 목마름도 더 이상 없어진다. 훔쳐보기만 해도 아픈 상대를 향해 피처럼 중얼거린다. 사랑한다고.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받는 사람보다 더 신적일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자 안에는 신이 있지만 사랑받는 자 안에는 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행은 떠남과 동시에 돌아옴을 수반한다.

안타깝게도 삶의 여정은 다르다. 돌아오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도 베니스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햇볕 내려쬐는 모래밭에서 철저히 고독하게 죽음을 맞는다.

인간은 여행지에서 죽는다.

여행지는 여행 간 곳이 아니라 뭔가 정처 없는 곳을 희구하며 걸어가는 길 도중일 게다.

세속적인 안식과 행복 속에 있어도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지는 것. 어두운 밤도, 밝은 낮도 풍경이 되어 존재하지만 그것도 아닌 길.

현존하는 거의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

걱정과 후회, 근심과 고통, 가난과 고독, 신체의 허약함, 악덕, 열정과 장애, 슬픔과 그리움 그 모든 게 있음에도 이루어지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어가야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 죽을 때까지는. 그게 삶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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