童子僧(동자승)과 北郭(북곽)선생
童子僧(동자승)과 北郭(북곽)선생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4.30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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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자 동자승(童子僧)들이 눈길을 끈다. 이 어린 스님들은 진짜 동자승이 아니다. 절간에서 불교신자 자녀인 어린이 몇 명을 삭발시켜 한 달 정도 승복을 입히는 ‘동자승 모델’들이다.

하지만 이제 동자승들은 부처님 오신 날의 특징적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해맑은 눈빛과 순진무구한 얼굴, 천진난만한 행동 등은 인상이 깊다. 동자승 모델이 깊은 인상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요즘은 산사(山寺)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동자승이 도시에 등장해 신선한 느낌을 주며 호기심도 불러일으키는 점이 하나일 것이다. 또 하나는 순수성을 그리워하는 이 시대 심리의 투영이기도 하다. 정치·경제·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위선(僞善)으로 혼탁해진 현실이다. 그래서 순수성에 목말라 한다. 부처님 오신 날 동자승을 통해 잠시나마 정서적 위안을 얻는 것은 그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의 삶에 과연 순수(純粹)가 있는가. 밤거리를 밝혔던 촛불, 허연 백발의 태극기는 아직도 우리의 눈 속에 맺혀있다.

이를 지켜봤던 도민들, 대한민국 최초로 탄핵된 대통령을 바라봤던 국민들은 며칠 남은 5·9 대선에 대한 신문 보도를 읽고 보면서 묻는다. 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의문을 갖는다. ‘이번에 투표를 한다고 해서 과연 이 땅의 정치가 순수하게 바뀌고, 사람들의 삶도 순수하게 될까?.’

그에 대한 답은 ‘노(NO)’, ‘아니다’이다. 애당초 정치란 것이 순수한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순수한 이상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사실은 헛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神)의 영역이 아니라 사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순수하고 이상적일 수 없기 때문에 정치가 필요하고 또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역설적인가.

▲정치란 어떤 경우, 위선(僞善)으로 자신의 영혼이 위태로워지는 일을 감수하고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래서 정치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절감해야 하는 슬픈 측면을 갖고 있다.

정치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이 ‘좋은 삶’, ‘좋은 정치’일 수는 있어도 ‘옳은 삶’, ‘옳은 정치’일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것은 다원주의적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옳은 것은 하나의 절대적 선택 내지 결단을 불러올 때가 많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옳음을 앞세우는 사람은 주변을 온통 분열로 물들게 할 때가 많다. 자신의 옳음만 생각할 뿐, 다양한 차이와 이견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박상훈, 도서출판 이음, p.26~p.61)

그렇다.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목표는 좋은 삶, 좋은 정치, 거기까지다. 옳은 삶, 옳은 정치, 즉 순수는 허상이다. 이런 말들이 위선일 뿐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이다. 순수하다, 혹은 순수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인데 이를 일반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한문으로 쓴 풍자소설 ‘호질(虎叱)’에는 ‘북곽(北郭)선생’이 등장한다. 북곽선생은 학문적 성취가 두드러지고 덕망 또한 높은 선비다. 하지만 그는 위선자(僞善者)의 전형이다.

북곽선생이 밤에 남몰래 정(情)을 통하다 발각돼 황급히 도망치다가 호랑이와 맞닥뜨린다. 목숨만 살려달라고 호랑이에게 온갖 아양을 떨었다. 호랑이는 “평소에 내게 욕을 했던 과거 일은 까맣게 잊었느냐. 이제 어려운 처지에 빠지니까 온갖 아첨을 다하는데, 너를 누가 믿겠느냐” 하고 호통을 친다. 밤새 호랑이에게 머리를 조아리던 북곽선생이 새벽에 고개를 들어 보니까 호랑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밭일 나가던 농부들이 왜 땅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느냐고 북곽선생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하늘이 높으니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넓으니 굽어보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내가 그 말대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에게 묻는다. 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머리를 조아리냐고. 후보의 말이 이랬다.

“하늘같은 국민을 우러러보고, 땅 같이 넓은 국민의 뜻을 굽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그 말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동자승의 눈을 보고 마음을 씻어야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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