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한없이 송구스럽고 죄송”
또 또... “한없이 송구스럽고 죄송”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4.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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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실낙원.

다 아는 영국시인 존 밀턴의 장편 서사시다. 내용은 구약성서 창세기 이야기를 소재로 아담과 하와의 타락과 낙원추방을 담았다. 인간의 ‘원죄’를 주제로 한다. 여기서 나온 게 지금 우리가 흔히 쓰는 원죄(原罪·original sin)의 시초이기도 하다.

이 원죄를 끌어낸 도구가 다름 아닌 ‘유혹’이다. 유혹의 사전적 의미는 ‘꾀어서 정신을 혼미하게 하거나 좋지 아니한 길로 이끈다’ 쯤으로 정의된다.

최근 지방정부인 제주도가 이 유혹에 빠진 공직자들 때문에 난처하고 난감하다. 이른바 업자와 유착하거나 이들의 유혹에 놀아난 공무원들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요즘 매일 같이 기자회견 등을 통해 ‘잘 나가는 도정치적’ 알리기에 바쁜 전성태 제주도 행정부지사가 고개를 숙었다.

“도민여러분께 한없이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지난 25일 간부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공직은 지금 이 땅의 청춘들에겐 곧 ‘낙원’이고, 로망이다. 그런 곳에서 제주도 행정의 실질적 책임자인 행정부지사가 고개를 떨군 채 조직의 치부에 대해 사죄했다.

최근 터져 나오는 공무원 범죄가 대부분 과거 도정 때 발생한 것이어서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실추된 공직불신까지 회복하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공직청렴 단골 하위권

해마다 12월이 되면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이 동일한 평가에 대한 정반대 결과를 놓고 표정이 엇갈린다. 한쪽은 청렴도 전국 1위, 다른 한 쪽은 청렴도 꼴찌라는 성적표에 웃고 운다.

물론 웃는 쪽은 제주도교육청이지만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대문짝만한 입간판이라도 집 앞에 내걸어 자랑하고 싶지만,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초상집’인 앞집 제주도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2004년의 경우만 하더라도 공직 청렴도에서 만큼은 ‘절대지존’이었다. 당시 부패방지위원회가 한국갤럽과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313개 공공기관 민원인 7만5317명을 조사한 결과 제주도는 조사기관 가운데 가장 높은 청렴도를 기록했다. 이는 곧 대한민국 청렴도 1위 공공기관이라는 의미다.

그런데 2006년 제주도 공직청렴도는 전국 6위로 곤두박질 쳤다. 2006년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해다. 이후 제주도 공직자들의 비리는 마치 막장 드라마처럼 이어졌다. 결과는 국민권익위원회가 해마다 실시하는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때 수치로 이어졌다. 발표시점인 12월이면 제주도는 부끄럽고 창피하다.

때문에 제주도는 시책의 최우선 순위에 공직청렴도 향상을 뒀다. 그런데 결과는 ‘꼴찌’다. 이러다 보니 ‘시책은 최우수 결과는 최하위’가 됐다. 최근 검·경의 공직비리 수사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면 말 그대로 가관이다.

비록 전직이지만 시장부터 현직 실무 담당자까지 성한 데가 없다.

 

#바늘 한 개 훔쳐도 ‘도둑질’

우리속담에 ‘도둑 한 놈에, 지키는 사람 열이 못 당 한다’는 말이 있다. 결심하고 달라붙는 사람은 도저히 당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예나 지금이나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쉽지는 않은 모양이다.

지금 제주가 꼭 이 꼴이다. 아무리 쌍심지를 켜 지키고 감시해도 비리공직자가 나온다. 답이 달리 있을 수 없다. 비리 연루자의 경우 행위의 가볍고 중함에 상관없이 공직에서 탈탈 털어 내야한다.

퇴직 후 적발된 직원도 연금은 물론 정부 훈·포장 등의 혜택을 소급, 박탈해야 한다. 바늘 한 개를 훔치던 소 한 마리를 훔치던 도둑질은 도둑질이고 모두 죄(罪)다. 과거 한 때 공직비리의 복마전으로 지탄받았던 서울시의 경우 단돈 1000원만 받아도 징계하는 이른바 ‘박원순법(서울시 공무원 행동강령)’을 시행하고 있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서울시는 이 제도에 따라 위생 점검 무마 조건으로 15만원을 받은 자치구 공무원을 해임하는 등 ‘원칙대로 대처’했다. 그 결과 서울시 공무원 비위발생 건수가 30%이상 줄었다. 제주도는 지금처럼 죽 쑬 바에야 차라리 서울의 경우라도 ‘컨닝’해야 한다.

부끄럽고 송구스럽다는 말을 언제까지 되뇔 것인가.

창피도 정도껏 해야지.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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