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달라졌어요
남편이 달라졌어요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1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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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남편과 나는 같은 고장 출신이다. 대학 때부터 고향을 떠나 터전을 잡기 시작한 것도 같다.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맞벌이를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이제 두 아이가 모두 성년이 됐다. 남편과 나는 이제 서서히 인생 후반전을 향하고 있다.

그런 남편이 달라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내가 하는 음식이 맛이 없다며 직접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보다 그의 요리솜씨가 좋다. 이전에는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데도 가사, 육아는 응당 여자의 몫이라 여기며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을 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가 몹시 달라지고 있다.

3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을 성인 중기라 말하고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을 성인 후기라 한다. 50대는 노부모와 자녀 사이에 허덕이며 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부양해야 할 부모가 있거나 혹은 부모의 죽음을 경험하기도 하고 이제 막 성인기에 들어서는 자녀들과 함께 지낸다. 남편도 그동안 직장의 변화, 부모의 죽음, 사춘기 자녀의 방황 등 수많은 일을 겪었다.

50대 남성은 남성 호르몬 분비가 감소되고 성욕이 감퇴되는 등의 남성 갱년기 현상이 나타난다. 대체로 남성은 여성에 비해 5년에서 10년 정도 늦게 나타난다.

신체적으로 갱년기 증후군과 각종 성인병·암 등을 겪게 되면서 불안·초조·좌절감을 느끼기도 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경제력이 늘 발목을 잡고 있기도 하다. 이 시기에 빠지기 쉬운 함정 중에 으뜸은 일중독과 건강염려증을 들 수 있다.

건강염려증의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암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오래 본 경우 자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즉, 부모와 자신을 동일시 하는 것이다.

둘째, 부부관계가 좋지 않아서 지속적인 긴장상태에 있는 등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부족한 경우다.

셋째, 정작 자신의 몸을 위해 필요한 규칙적인 생활, 식사, 휴식 등을 취하지 않고 불규칙한 생활로 몸을 혹사한 후 그에 대한 보상으로 비싼 영양제, 보양식품, 건강보조제 등을 무분별하게 찾는 경우이다.

이런 염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부모와 동일시하는 마음을 해결해야 한다. 자신과 부모는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어린 시절처럼 부모와 자신을 일심동체로 여기게 된다. 유아적인 퇴행이다. 힘들고 두렵지만 ‘나와 부모는 별개다’란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는 주변의 정보에 너무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일이 많다면 일을 줄이고 너무 할 일이 없다면 일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 삶의 행복도를 점검해 봐야 한다. 더 이상 아픔 속으로 도망가지 말자. 아프다고 말하며 자식을 조종하려는 것은 아닌지, 배우자와의 불화를 인정하지 않고 몸이 아프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지, 주변인들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진 않은지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자신의 몸을 잘못되게 사랑하는 방법이 건강 염려증이다. 푸른 청년시대가 막을 내리며 노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 그리고 남성의 갱년기에 급격히 느는 것이 또 있다. ‘화’이다. 자신의 상태를 주변에 알리고 싶은데 방식을 잘 몰라 일단 ‘화’부터 낸다. 그러다 문득 침묵한다. 과민함, 조급함, 공격과 방어적 태도도 자주 보인다.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이었는데 금세 파괴적인 사람이 되기도 하는 등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이 파괴적인 속성과 화해하는 것이 바로 중년기 중심과제라고 철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자끄라깡이 이야기했다.

부르륵 화를 낸 남편이 예전에는 잘 못하든 안 하든 “미안해”라는 이야기를 건넬 때, 그의 갱년기를 느끼는 나는 사과를 받아 좋으면서도 마음 한켠에서 찌르르 슬픔의 신호를 느낀다. ‘세월에 장사가 없구나. 그도 나도 늙어가는 구나’ 싶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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