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동화
도깨비동화
  • 제주일보
  • 승인 2017.04.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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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자. 세이레어린이극장 대표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드라마를 좋아하는 난 이 드라마를 한두 편을 제외하곤 다 봤다. 본방송을 볼 수 없을 때는 재방송을 챙겨서 볼 정도였다. 나뿐만 아니다. 전국적인 도깨비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 있었던 드라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내지 않았나보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류의 물길이 막혀 버린 중국에서조차 비공식적으로 열풍이라고 한다. 도깨비는 못된 친척을 벌주고, 선량한 사람을 도와주고, 도깨비신부를 데리고 데이트하러 국경을 훌쩍 넘나든다. 문 하나만 열면 캐나다고 서울이다. 뒤에서 모르게 도움을 주는 키다리아저씨가 아니라 도깨비신부를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키다리도깨비인 셈이다. 이별을 앞두고 “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좋았다”라는 도깨비의 대사는 이곳저곳에서 회자될 정도로 유명 대사가 되었고 드라마에 소개됐던 시집은 베스트셀러가 됐단다.

 

도깨비. 반가운 이름. 옛날 전래동화나 신화 속에 나오는 도깨비의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할 정도로 재밌다. 블록 판타지다. 저승과 이승을 연결해주는 도깨비, 어릴 적 긴긴 여름밤에는 옥수수를 쪄먹으며 모깃불을 놓고 옛날이야기·도깨비 이야기 등을 읽었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나는 유달리도 도깨비, 귀신이야기를 즐겨 읽었던 것 같다. 그 이야기들은 나를 오싹하게 만들고 밖에 아무도 없을 때는 방문을 열고 ‘변소’를 다녀오질 못할 정도였다.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즐겨 읽었던 것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같다. 그런데 그 때는 어린아이였으니 그런 마음이었다고 치더라도 지금 오십 중반인 지금 내 곁에도 도깨비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내가 분노조절을 못하면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혼도 내주고 결정을 못하고 주저주저할 땐 지혜도 빌려주고 기대고 울고 싶을 땐 따뜻한 기둥이 되어주는 그런 키다리도깨비가 있었으면 좋겠다.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통령 장미대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문화예술계에도 엄청난 파장이 있었다. 소문으로 떠돌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으며 현실 비판적인 예술인들이 무대를 빼앗기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아우성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정부 차원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을 솎아내왔음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분노하는 문화예술인들은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를 치고 문화예술인들의 분노를 보여주는 공연도 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수준에도 못 미치는 출연료를 받는다는 걸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처럼 지원배제라는 강수를 두고 있었다.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이였으면 블랙리스트에 들어가지 못한 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 안에 못 끼어서 부끄럽다고 커밍아웃을 했을까? 우리가 문화라고 하는 건, 한 사회를 통합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러한 문화는 정부가 주도한다고 융성시킬 수 없다. 문화란 향유하고자 하는 이들과 공급하고자 하는 이들이 만나는 시장이 있어야 융성한다. 가장 좋은 문화정책은 지원은 하되 국가가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시행해 오고 있는 ‘팔 길이 원칙’이다. 선진국들의 문화정책이 보수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 민주화’에서 진보주의적 ‘문화 민주주의’로 변화하고, 지금은 시장 지향적 실용주의로 변화하는 추세에 있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의 문화정책은 정권의 특성에 따라 공론화 과정 없이 이리저리 결정되어 온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정부의 문화정책은 문화를 사회 변혁의 도구로 삼는 특정 이념 세력이라고 여겨져 왔던 것도 사실로 드러났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이빙 벨’ 상영을 둘러싸고 시민사회와 국민들 간에 얼마나 큰 갈등이 생겼나. 불행하게도 찾아보면 그런 예들은 많다.

 

요즘, 문화예술계에서도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크다. 문화가 융성해야 나라가 부강 한다며 문화융성위원회까지 뒀었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꼼수가 있어왔으니 이젠 과감히 적폐를 청산해야한다는 것이다. 옳다. 지원은 하되 간섭이 없으면 좋겠다. 사실 문화예술단체들은 매년 문화예술지원사업에 목숨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원사업에 선정이 안 되면 그 해 공연을 제작할 수가 없다. 메세나라고 하는 기업후원제도가 있으나 큰 기업이 없는 이곳 제주지역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도 창작해야지, 행정업무 봐야지, 내가 예술가인지 경리인지 모르겠다고 자주 짜증을 부리게 되는데, 지원은 하되 간섭을 않다니, 잘 해내길 기다려준다니,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 말인가, 다만 궁금한 건, 언제면 팔 길이 원칙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될까 이다. 그러고 보니 팔 길이 원칙이 문화예술계의 도깨비일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 방망이를 휘두르면 사람이 그토록 원하는 금은붙이가 뚝딱, 원하는 일이 뚝딱. 도깨비는 물질에 대한 욕심보다 풍류와 낭만, 의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아 문화예술인하고도 잘 어울릴 것 같다. 하루하루 힘들어지는 문화예술계에 새로운 변혁을 바라는 마음으로 “도깨비야, 나와랏~!!”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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