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의 걸어온 길 알려주는 옛 주인의 도장”
“헌책의 걸어온 길 알려주는 옛 주인의 도장”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1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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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인(藏書印)
① 서양(西洋) 장서표(藏書票) 형식의 고(故) 이철승씨(李哲承) 장서인. ② 구한말 조선 주재 일본영사관의 장서인. ③ 누군가에 의해 장서인이 잘려나간 ‘후산시주(后山詩註)’ 권9(조선시대 15세기 판본). ④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과 중앙일보 도서관의 장서인. ⑤ 귀여운 장서인이 찍힌 현기영의 소설 ‘누란’(창비, 2009).

[제주일보] 헌책방에 들어오는 책은 다 임자가 있었던 책들이다. 따라서 헌책에는 예전 주인이 읽었던 흔적 외에도 그 책의 임자가 누구였는지를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그 책을 산 날짜나 장소, 당시의 느낌 등과 함께 본인의 서명을 한 경우도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게 ‘장서인(藏書印)’을 찍은 경우이다.

‘장서인’은 책이나 그림 등의 소장자가 자기 소유임을 밝히기 위해 찍는 도장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는 찍어 놓은 도장의 자국까지 포함하며, 그 때는 장서인기(藏書印記)라고도 한다. 소장했던 기관이나 개인에 따라 각기 다른 인장이 사용되었기에 한 책에 찍혀있는 장서인을 보면 그 책의 전래 과정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최초의 장서인 관련 기록은 세조 9년(1463)에 양성지(梁誠之)가 올린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려 숙종 6년(1101)에 ‘고려국십사엽신사세어장서대송건중정국원년대요건통원년(高麗國十四葉辛巳歲御藏書大宋建中靖國元年大遼乾統元年)’과 ‘고려국어장서(高麗國御藏書)’라는 장서인을 찍었고, 세조 당시에도 그 도장 자국(印文)이 어제 찍은 것과 같이 선명한 수 많은 책(萬卷)이 여전히 조선 왕실에 소장되어 있었다는 것이다.(“朝鮮王朝實錄” 世祖 9年 5月 戊午)

현재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서인은 고려 고종(高宗 1213~1259) 때 조판된 국보 제203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 남아 있는 ‘해동사문수기장본(海東沙門守其藏本)’이다. 이는 재조(再雕) 대장경(大藏經)을 간행할 때에 교정(校正)을 맡았던 승려 수기(守其)의 장서인(藏書印)이다.

고려 숙종 때의 장서인이 찍힌 책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없고, 그 때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인기(印記)가 남아있는 책들이 일본에 전래되고 있다. 특히 일본 왕실도서관(宮内庁 書陵部)에 소장되어 있는 “통전(通典)”에는 고려 숙종 때의 장서인과 조선 세종 때의 경연인(經筵印 경연이라는 도장)이 한 책에 남아 있어 그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다. 다만 고려와 조선 두 왕실의 사랑을 대대로 받던 책이 다른 나라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아픈 역사는 어찌할까?

우리 선인(先人)들의 다양한 장서인을 보면 그 글자의 깊은 뜻과 아름다운 글꼴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서울대 규장각 등에 소장된 우리 고서에 찍혀있는 ‘조선총독부도서지인(朝鮮總督府圖書之印)’ 등 식민지시대의 슬픈 상처를 접할 때면 마음이 아프다.

한때 애서가(愛書家)들 사이에 장서인 갖기 붐이 분 적도 있지만, 요즘 책방에 들어오는 비교적 신간 서적에 찍힌 귀여운 스템프 장서인이 점점 늘어가는 게 좋다. 아름다운 것이던 귀여운 것이던 간에 장서인은 독자들의 책에 대한 사랑 표현 방식 가운데 하나이고,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조선 초기부터 광복 이전까지 서화가 및 문인들이 사용하던 인장을 모은 인보(印譜 역대 古印이나 名家들이 새긴 印章을 모은 책)로 유명한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인수(槿域印藪)”에도 많은 장서인이 수록되어 있다. 장서인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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