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선거’ 농협, 개탄스럽다
‘돈선거’ 농협, 개탄스럽다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4.12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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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지난 달 초 제주를 찾은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제주본부에서 의미있는 얘기를 했다. 제주본부 간부와 도내 23개 농‧축협조합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였다.

“1961년 농협이 출범한 후 비판적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돈벌이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정권마다 농협 개혁을 운운했다. 잘사는 농업인, 행복한 농업인을 만드는 것이 농협 존립의 첫 번째 목적인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농협법 제1조를 화두로 꺼냈다. 농협이 왜 필요한 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를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있어서 참석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역농협 직원으로 출발해 중앙회장에 오른 ‘골수 농협맨’이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뼈저리게 느꼈던 점들을 제주농협 조합장들과 공감하려는 의도였다.

▲최근 도내 한 지역농협의 비상임이사 선거가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얼룩져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지역농협 이사는 마을별로 구성된 영농회나 지점 관할지역에 1명씩을 안배하기 때문에 같은 마을에서 1명만 출마하면 대의원회에서 무투표로 당선된다.

같은 마을이나 지점 관내에서 후보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아 경선을 통한 선출이 불가피해질 경우 전체 대의원을 상대로 한 치열한 물밑 선거전이 벌어진다.

문제가 된 지역농협 안팎에서는 ‘50당 30낙’이라는 얘기도 떠돌았다. 대의원 한 명 당 30만원을 건네면 낙선하고 50만원을 주면 당선된다는 말이다.

전체 대의원에게 이런 정도의 금품을 줬다면 상당한 금액을 뿌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혼탁한 선거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대의원은 200만~300만원을 챙겼다는 설도 무성하다.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도긴개긴’이다.

▲조합장도 아닌 이사 선거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조합장을 할 마음이 있다면 이사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자리다. 농협 경영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대의원과 조합원들을 자연스럽게 만나 미리 자기사람들을 심을 수 있다.

임기 4년 동안 매달 정례 이사회마다 회의수당으로 20만~30만원의 ‘용돈’을 받는다. 인사위원회처럼 농협 내 별도 위원회가 꾸려질 경우 위원으로 참여하면 다른 수당도 따라온다.

이렇게 받는 ‘거마비(車馬費)’가 한 해 수백만이다.

구체적인 잇속도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다. 하나로마트에 자신의 농산물을 하나라도 더 납품할 수 있도록 입김을 넣을 수 있다.

농협이 추진하는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각종 자금지원 과정에서 유‧무형의 혜택을 입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과 지인들의 자녀를 직원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이사를 하려는 이들의 목적이 모두 이런 것들 때문은 아니다. 정말 순수하게 조합의 운영을 감시하고 조합원을 위한 농협 경영의 한 축이 되겠다는 의지를 가진 인사들도 적지 않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은 이사가 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조합장을 견제하려는 사람이 이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합장이 나서는 경우도 있다. 특정 이사 후보를 음성적으로 지원해 상대방을 ‘물 먹이는’ 방법을 쓴다.

조합장들은 다음 선거에서 자신과 경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사 후보들도 견제한다. 이런 방법들이 모두 성공하면 이사회는 조합장의 친위부대가 될 수 있다. 매우 위험한 경우다.

그래서 이사 선거 방법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사회는 협동조합의 심장이다. 이사회가 길을 잘못 든 조합장과 한 패가 되면 그 농협의 비전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사들이 깨어 있으면 조합장의 전횡은 막고도 남는다.

제주농협에 아직도 ‘돈 선거’라는 구태가 남아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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