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떡을 쳐도 선관위 시계는 간다
대선이 떡을 쳐도 선관위 시계는 간다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4.0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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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신문과 방송에서는 ‘벚꽃 대선’, ‘장미 대선’ 등 온갖 수식어를 붙이고 이슈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 막상 시장에서 만난 제주 도민들의 민심은 달랐다.

“이번 대선에서는 투표하지 않을 거예요.”, “관심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도 똑같을 것 같다.”, “시끄럽기만 하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등등. 지난해 봄 총선만 하더라도 투표에 꼭 참여해 더 나은 후보를 뽑겠다던 민심과 전혀 다른 모습들이었다. 지난 겨울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도민들이 제주시청 앞으로 나와 촛불을 들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중략)
본사 기자가 대선 민심현장을 돌아보고 난 후 보도한 기자수첩(본지 4월 3일자 15면 보도) 내용 중 일부분이다.

이제 대통령 선거일(5월 9일)은 불과 30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 후보들이 내놓는 정책은 불투명하고, 구호는 모호하다. 술집에서도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다. 과거 대선 때처럼 특정 후보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지지자들도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찡한 감동은 더욱 없다.  도민들은 “역대 대통령 선거 중에서 가장 재미없는 선거”라고 한다.

▲왜 그럴까. 우선 제주도의 정치지형과 대선 지형이 거꾸로 형성된 탓이다. 제주도는 도지사가 바른정당 소속이고 제주도의회도 바른 정당이 사실 상 장악하고 있다. 제주도 제1당이 바른정당이다. 그러나 현재 대선지형에서 바른정당과 그 후보는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4위다. 지지율이 반등할 기미도 없다. 정치권에서는 바른정당이 선택지가 자유한국당과 연합하는 길 뿐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래도 집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데 있다. 선거가 재미없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현재 대선후보 1, 2위를 다투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제주도 조직은 동근생(同根生), 같은 뿌리인 탓이다. 한 몸에 머리가 둘인 일체쌍두형(一體雙頭型)이다. 이 사람이 저쪽이고 저 사람이 이쪽이다. 선거가 끝나면 도로 한 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일체쌍두지만 어차피 하나다. 그래서 “누가 대통령이 되도 똑 같을 것 같다”는 것이다.

▲선거이슈가 없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초미(焦眉)의 중대 이슈가 눈 앞에 있다. 우선 경제가 바람 앞에 등불이다. 국가적으로 성장엔진이 꺼지고 가계부채는 대폭발 직전이다. 이로 인한 중산층의 몰락과 빈곤층의 급속한 증대 등 국가 경제 전반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 뿐인가. 미국, 일본. 중국, 북한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안보환경은 내일 일을 모를 정도로 불확실하다.

이쯤 되면 대선 후보들이 나라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각각 앞세워 불꽃 튀기는 일전을 겨루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유권자들도 어느 후보가 진정한 ‘구국의 백기사(白騎士)’일 것인가를 놓고 서로 열띤 논쟁을 벌일 법하다. 하지만 동근생이어서 그런가.

정책이 별로 차별성이 없다. 저마다 맨 앞머리를 차지한 정책은 공히 일자리 창출이다. ‘공정경제’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일자리 처방은 짜깁기 일색이고 액션플랜은 빈약하다. 그 대신 상대방을 헐뜯는 네거티브 선전에만 치중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서생(書生)의 문제인식과 상인(商人)의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정치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생’은 원칙을 중시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 지를 따지고 지키는 쪽이다. 정치철학의 영역이다. 하지만 현실정치에선 그것만으론 어림없다. 장사하는 사람이 손님의 속내를 헤아려 돈 버는 궁리를 하듯 사세(事勢)를 읽고 때론 협상을 잘해야 한다. ‘상인감각’이 있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해결 방안이 서툴러 결국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고백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실무처리에선 수완을 발휘했으나 인문적 상상력 결여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그렇다면 지금 대선후보들은 어떨까. 굳이 분류하자면 모두가 서생형 캐릭터에 가깝다. 공부 잘한 ‘범생’ 스타일에 자기가 정답이라고 여기는 언행으로 일관한다. 장사꾼 감각으로 사세를 읽고 협상도 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통합의 리더십이 아쉬운 것이다. 대선이 떡을 쳐도 선거관리위원회 시계는 간다. 이 날치기 선거판에서 어영부영 대권을 거머쥔 대통령이 이 위기의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걱정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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