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이 주는 축복
불편이 주는 축복
  • 제주일보
  • 승인 2015.12.2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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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 / 다층 편집주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현실이 참 많이 달라져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숫자의 아이들이 한 교실 안에 빼곡히 들어앉아 있어 담임의 입장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교육 현실도 너무 열악해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추운 겨울이면 차가운 도시락을 들고 와서 입김을 불어가며 먹었고,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이면 등·하굣길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때는 인간적인 정과 의리는 살아 있던 시절이었다. 다들 그러하니 엔간한 불편은 그러려니 감수하고 지나가는 것도 일상이었고, 아이들이나 학부모들도 큰 불평을 않고 생활했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오랜 세월 고집해 온 것은, 가급적이면 아이들을 불편하고 고생스럽게 만들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일이었다. 체험학습을 하더라도 가능하면 많이 움직이게 하는, 힘든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쓰는가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것을 찾았다. 야영 활동만 하더라도 편안하고 안락한 시설을 이용하기보다는 직접 텐트를 치게 하고, 밥도 직접 지어먹게 한다. 이러다 보면 지도를 맡은 교사들 입장에서도 신경이 곤두서고, 아이들과 함께하려면 고생스럽기는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심하다. 교사들이라고 고생스러운 일을 즐길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어릴 적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속담도 있는 것처럼, 고생이 클수록 추억은 커진다는 것이 나의 교육적 지론인지라, 함께 부대끼고 힘든 과정을 겪고 나면 아이들은 성취감과 더불어 추억이 더 강해지고 커짐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은 힘든 것은 싫어하고 무조건 피하려고 한다. 심지어 부모들도 아이들이 힘든 것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 당신들이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편안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과 추억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교육 현장에서라도 겪지 않으면 추억 없는 시절을 보내게 될 것이 뻔해 보여 불쌍한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요즈음의 교육은 거꾸로 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라고 하고, 설문조사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부러 선택할 리 없다. 우선 당장에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하려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려는 게 요즘 아이들이다. 그게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있다면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돌연변이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하다. 심지어 수학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마저 놀이동산을 포함시킨다.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에서인데, 엄청난 비용을 들여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가급적이면 교육적인 성과를 우선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장체험학습은 교실을 벗어나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학습의 기회인만큼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우선 입에 단 것을 먹이고, 재미있는 것만을 제공하기보다는, 비록 입에 쓰고 고생스러울지라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에는 불편하게 키우자고 권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편한 것을 찾는 것은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일부러 편한 것을 제공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혜를 발휘하게 마련이다. 재미도 마찬가지다. 과정에서 재미를 찾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아이들의 지혜와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을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제공해 주는 것이 아이들을 위하는 일이 결코 아님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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