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간절한 제주
5월이 간절한 제주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4.06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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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 ‘한올지다.’

순 우리말인 이 말은 한 가닥의 실처럼 매우 가깝고 친밀하다는 의미로 곧잘 쓰인다.

지금 생각하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릴 지 몰라도 제주와 중국은 ‘한올지다’라는 단어까지 빌릴 정도는 아니지만, 한 때 가깝고 친밀한 사이였다. 제주시 연동 중심거리에 중국기업 이름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바오젠 거리다.
2011년 7월 제주도는 제주시 연동 7길 ‘차 없는 거리’의 명칭을 ‘바오젠거리’로 바꿨다. 중국의 바오젠일용품유한공사가 그 해 1만1000여 명의 직원들을 인센티브 관광 목적으로 제주에 보낸 것에 대한 화답차원에서 거리 이름을 아예 중국 기업명으로 했다.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과거 4개 시·군이 있을 땐 각 시·군마다 자매도시로 중국의 도시를 지정했다. 당시 제주와 중국의 자매도시들은 자신들이 개최하는 축제 등 주요행사에 상대 도시 관계자들을 초청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그런 일들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중국이 제주에서 까마득하게 먼 나라가 됐다. 이유는 하나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몰고 온 후유증이다.

그 후폭풍이 지금 제주를 곤경으로 끌어가고 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 관광객들이 차고 넘쳤던 제주시 연동 바오젠 거리와 중앙로지하상가 등은 적막강산이다.
 
#중국인 제주관광 반 토막
지난 달 15일부터 중국 정부가 사드보복의 일환으로 자국 국민들의 한국관광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중국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경제와 문화 분야 등에 대해서도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실제 중국 현지의 분위기는 더 심각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속의 한국이라고 불리는 베이징 코리아타운의 가게들은 간판의 ‘한국’이라는 글씨를 떼는가 하면, 한글이 들어간 메뉴를 없애는 등 한국 색깔을 지워나가기 바쁘다.

정도의 차이일 뿐 제주 또한 어려운 게 이만 저만이 아니다. 관광산업이 지역경제의 근간을 지탱하는 제주는 지금 중국의 압박 앞에 마땅한 대책도 없고, 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실제 지난 달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7만7255명으로 지난해보다 61.4% 감소했다.

불과 보름 간 이뤄진 중국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광통제로 제주 관광시장이 침체의 늪으로 급속하게 빠져들고 있 있다.

최근 몇 년 새 경쟁적으로 생겨난 중국인 관광객 수용을 위한 숙박시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전체 관광객의 70%선을 차지하는 중국 단체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해 온 전세버스 업계를 비롯해 음식점과 도소매업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대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공허한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지금보다 더 나쁠 순 없어
‘당신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기다립니다.(因爲理解 所以等待)’
자사의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 준 롯데가 중국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사 매장 앞에 내놓은 홍보의 글이다. 롯데가 중국의 ‘공격 표적’이 된 것은 당연하다. 그런 롯데의 ‘수난’에 제주는 애증이 교차한다. 고통 받는데 대한 동병상련이다.

하지만 또 다른 편에선 왜 ‘악역’을 자청해 상황을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었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드 배치는 북핵(北核) 차원을 넘어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다.

사드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었고, 이게 유일무이한 ‘절대 대책’이었나 하는 의문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런데 지금의 정서에서 이를 입 밖에 내면 ‘비애국자’로 낙인찍히기 딱 안성맞춤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대놓고 말을 못한다. 할 말이 없어서 못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믿고 따른 국민들에게 기대와 희망은커녕 오히려 좌절과 분노를 남겼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제주 앞에 희망과 기대가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달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중국과 ‘관계개선’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제주 관광시장에도 온기가 기대된다.

그래서 제주는 5월을 기다린다. 적어도 지금보다 더 나쁘진 않을 것이 확실하기에.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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