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내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04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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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서울가정법원 상담위원/숙명여대.가천대 외래교수

[제주일보] 일을 마치고 집 주차장에 차를 막 대었을 때, ‘아차 내일 일정을 적어둔 노트를 챙겨 오지 않았구나’를 깨닫는다. ‘일정표가 없으면 안되는데….’ 다시 일터로 가자니 거리가 만만치 않고 모른 체 하려니 엉켜 버릴 내일 하루가 막막하다. 할 수 없다. 다시 차에 시동을 켜서 노트를 가지러 간다. 가면서 ‘머리 용량이 꽉 차서 몸이 고생한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가 ‘노트를 어디다 두고 왔는지 기억나는 것도 다행이다’고 위로도 했다가….

나이 오십 넘으면 확실한 치매나 노화 증상은 아니지만 몇 가지 증상들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클레어 와그라라는 심리학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다음과 같은 증상을 ‘와그라 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첫 번째, 생각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헤매느라 주변 사람을 지루하게 하는 사고 기능의 변화가 생긴다. 본인이 인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다. 다 자란 자식들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또하며 설교를 늘어 놓을 때가 이 때이다.

두 번째, 일을 할 때 마무리를 못한다. 집중을 하지 못해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지쳐버린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기 마련이다. 뭘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도 앞 페이지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책을 다 읽기 어려워진다.

세 번째, 말을 할 때도 변화가 생긴다. 하고자 하는 말이 혀 끝에 머무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단어 배열이 거꾸로 되거나 “그거 그거” “저기 그거 있잖아” “거시기 그거”라고 말한다. 정확치가 않고 불필요한 단어들을 넣어야 이야기가 풀린다.

네 번째, 행동에도 변화가 온다. 과거에 잘 했던 일인데 갑자기 어려워지기도 하고 쇼핑을 한꺼번에 끝내지 못하고 여러 번 하게 된다. 조직적으로 일을 하지 못해서 금전적인 실수도 뒤따른다.

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뇌도 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뇌의 크기도 기능도 감소한다. 반면에 증가하는 것도 있다.

▲의존성: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경제적, 신체적, 정서적 의존이 증가한다.
▲유산을 남기려는 마음: 죽기 전에 자손, 기술, 재산 등을 남기려는 마음이 증가한다.
▲친근한 사물에 대한 애착: 사용해 온 물건에 대한 애착이 증가하며 이를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마음의 평온을 추구한다.
▲우울: 질병, 배우자 사망, 경제사정 악화, 사회로부터의 고립, 과거에 대한 회상의 증가로 인해 우울성향이 증가한다.
▲경직성: 자신에게 익숙한 습관적 태도와 방법을 고수하는 마음이 증가한다.
▲조심성: 정확성을 중시하며 감각능력이 감퇴하고 결정에 대한 자신감 결여가 증가한다.
▲내향성: 외부 사물이나 행동보다는 내적 측면에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이 증가한다.
▲수동성: 자신의 사고나 감정에 따라 사물을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타인에 대한 의존성이 증가한다.
▲건강염려: 노화와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 하고 불안해 하는 마음이 증가한다.

이렇듯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50대는 젊다고도 나이들었다고도 딱히 말하기 어려운 시기이다.

이 시기 개인차가 심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 내는 사람들도 많다. 오십 이후에는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칭찬받고 존경할 수 있는 내면적 목표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얼마나 내면이 평화로운가? ▲얼마나 자신에게 충실한가? ▲얼마나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가?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가?

위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남기며 오십 이후에 10년을 살아간다면 노년의 생활이 훨씬 편안해질 수 있다.

그 시간이 아프고 절망스럽고 좌절이 깊을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어 아프고 살아있어 절망하고 살아 있어 좌절하는 것이다.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살기 보다는 자신을 위해 사는 삶을 추구하자.

너무 늙었다고 포기하지 말자.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행복한 노년을 위해 잘 노는 법도 꼭 배워보자.
소박하지만 담대한 용기를 지니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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