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청춘
아빠의 청춘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0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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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하귀일초등학교장 / 수필가

[제주일보]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인생.’ 우렁찬 노래와 신나는 박수소리가 성당 안을 채운다. 아버지와 나란히 앉은 가족들의 상기된 표정은 환하게 피어난 꽃송이 같다. 아버지 학교 수료미사는 가족의 발을 씻어주기, 가족 포옹하기, 사명서 낭독하기, 활동 영상 감상하기, 강론, 영성체 순으로 이어졌다.

꿇어앉아 아내의 발을 씻어주는 남편의 모습에서 이 땅의 모든 부부가 서로 섬기는 마음으로 사랑하기를 기원했다. 어떤 이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명서를 낭독할 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금연하겠다, 집안 청소를 하겠다, 가족여행을 하겠다 등등 나름 아버지로서의 최선의 다짐들이었다.

남편에게 아버지학교 입학을 권유했을 때, “환갑에 아버지학교는 무슨 아버지 학교냐, 할아버지 학교면 몰라도…” 하며 웃어 넘겨버렸다. 등 뒤에서 ‘평생 아버지로서 살아야 함을 왜 모를까’ 몇 번이고 외쳤다.

그러던 남편이 이런저런 연유로 아버지 학교에 입학했고 5주간의 여정을 마쳤다. 숙제라면서 포옹하고, 편지쓰고 나름 변화를 시도하는 용기가 보였다.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상처, 아내, 아들·딸과의 관계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고 여기며 가정의 참된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했다. 속내를 담은 손 편지를 읽고 나니, 서로에게 무덤덤해진 부부사이가 보였다. 아이들의 어머니로 사는 아내를 보면서 남편도 외로웠을 터이다. 남편이나 아버지의 의무는 강요하면서 그 자리를 오롯이 남겨놓지 못한 성급함도 보였다. 고맙고 잘하는 점은 모래 위에 새겼고, 서운하고 부족한 점은 돌에 새기는 아둔함도 있었다.

이참에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던 모든 일에 대하여 용서를 청하였다. 나름 참느라고 노력했다는 뜻도 전했다. 남편을 향한 총알은 열 번, 스무 번을 참다가 발사된 것임을 알아달라고도 했다. 이 땅의 남편들은 아내들의 가슴에 참을 인(忍)자가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지 알기나 할까. 또한 아내들은 남편들의 외로움을 얼마나 헤아릴까.

오랜만에 귀국한 딸을 반기는 아버지의 얼굴엔 반가움이 가득하다. 딸을 향해 두 팔로 포옹하려는 순간, 딸은 ‘안 돼~~’ 하면서 몸을 피한다. 아버지의 웃음에서 섭섭함이 묻어난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아버지는 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였다. 딸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는 왜 오빠와 달리 나한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냐며 억울해했다. 아버지와 딸의 애증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번 참에 아버지는 그걸 조금이라도 풀고 싶어 더 크게 팔을 벌렸을 텐데….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는데 처음에는 몰라서 못했고, 이제 배우고 나서 하려니까 이미 늦어버렸다.” 저녁 상 앞에서 한 남편의 말이다.

딸이 출국하는 날 아버지는 다시 작별의 포옹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딸이 마지못한 듯 안겼다. 아버지의 얼굴엔 숙제하나 해결했다는 안도감 같은 환한 미소가 번졌다. 아빠의 마음은 아직도 딸 사랑인데 딸은 아직도 멀리 있기만 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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