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이란 미명과 진정한 통합
통합이란 미명과 진정한 통합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0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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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제주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기소되면서 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들은 국민 통합을 주요 의제로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따라 분열된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이 요구는 일면 타당해 보이면서도 매우 불편하다. 탄핵이 불거진 후 3개월이 넘는 동안 국민들 중 무려 75~81%가 탄핵을 찬성했고 반대는 14~18%에 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전 새누리당에 해당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합쳐서도 20%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합의 당사자는 누구이고 통합의 대상은 무엇일까? 의구심이 날을 세운다.

통합이란 주로 서로 대립하는 둘 이상의 요소들이 반목을 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를 이해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하나가 되기 위한 조건이나 하나가 되는 과정을 따져 묻는다면 문제는 다소 복잡해진다. 통합은 단순히 상대의 입장과 이익을 인식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기와 다른 점을 인정했으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입장과 이익으로 변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받아들인 상대의 것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화하는 당사자에게는 부담과 고통이 따르며 이것이 용인돼야 비로소 통합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야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동일한 것을 목표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통합은 주로 다수가 사회적 약자인 소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즉 다수와 소수가 대립될 때 다수가 소수의 요구들을 인정하고 이들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변화를 보임으로써 하나가 된다. 가난한 계층의 통합이 좋은 예이다. 빈곤층의 낮은 소득은 차이와 대립을 낳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소득보장제도들이 도입되고, 그 결과 빈곤층의 소득이 올라가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은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세를 통해 함께 분담한다. 하지만 탄핵 반대 진영이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자신들을 사회에 통합시키라는 요구는 위 통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우선 이 요구가 타당하기 위해서는 과오에 대한 인정과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도 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은 어떠한 사과도 없이 오히려 잘못이 없다며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 다수는 소수인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어떠한 유인도 찾아낼 수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탄핵 반대 진영이 고수하는 입장이나 이익들 중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전혀 없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된 행태나 판단 기준들을 국민 다수가 받아들여 똑같은 잘못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것을 버리고 상대의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주체는 탄핵 반대 진영이다. 탄핵의 이유들을 인정하고 적폐를 청산하며 국민을 위한 국정을 펼쳐야 한다는 기준들을 자신들의 기준으로 받아들여 이에 의거하여 향후 국민을 위한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 즉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75%에 해당하는 국민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탄핵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들은 지금의 통합 주장에 숨겨진 의도들을 들춰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 또는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 현실 정치판에서 생명을 유지하려는 세력이 자신들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피하려는 것이다. 국민 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들이 저지를 죄와 무능을 눈감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요구는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우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그것의 수용은 커다란 잘못을 눈감아 줌으로써 미래의 잘못을 잉태하는 또 다른 적폐일 뿐 진정한 의미의 통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일제 청산의 실패가 가져온 크나큰 부정적 결과들을 매일 매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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