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지는 봄날, 잔인했던 4월 떠올리며 토산 길을 걷다
동백꽃 지는 봄날, 잔인했던 4월 떠올리며 토산 길을 걷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4.03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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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13. 올레 제4코스(표선해변~남원포구) -토산산책로~영천사(6.6㎞)
한국불교태고종 제주교구 소속 사찰인 ‘영천사’와 노단새미 주변 쉼터

[제주일보] # 봄, 토산산책로 걷기

봄이 무르익어간다. 돌담 너머로 유채꽃은 다시 피어나는데, 그 날도 그랬듯이 동백꽃은 뚝뚝 지고 있었다. 제주의 잔인했던 4월을 떠올리며 해변 산책로를 걷는데, 난만한 갯무꽃에서 나비 한 마리 날아올라, 나풀나풀 춤추며 길 건너 무덤으로 날아간다.

 

‘나비 한 마리 봉분 풀잎 위에/ 꽃잎처럼 내려앉았다 비상하는 오후/ 황홀하다/ 죽음이 저리 승화될 수 있다니/ 살아남은 자/ 웃음 속에/ 슬픔과 고뇌 가득하지만/ 죽은 자 다 잊고/ 이승 저승 교통하고 있으니/ 그래, 아픔은 묻고/ 아름다움은 날아올라라/ 날아올라서 눈부신 햇살이 되어라// 어둔 세상 날빛 세워 밝히는/ 꽃잎 같은 우리 임’

-김광렬 ‘나비’ 모두

 

# 알토산과 웃토산

‘베트남·필리핀’이라는 현수막에서 제주, 아니 대한민국 총각들의 현실을 떠올리며, 토산중앙교차로를 지나 토산봉 쪽으로 오른다. 올레길에 토산봉과 거슨새미를 넣고자 한 코스 기획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토산리는 해안가에 위치한 마을이 토산2리인 ‘알토산’이고, 토산봉 위에 위치한 마을은 토산1리 ‘웃토산’이라는 것만 알 뿐, 경계는 정확히 모르겠다.

마을길을 걷다가 3년 전에 토산1리를 취재한 일이 생각난다. 한 마을 원로가 나서서 ‘학생 때 제주시에 방을 빌리려다 억울하게 당했던 이야기’라면서, 그 내용을 제대로 밝혀 달라고 했다.

그것은 제주 전역에 떠도는 ‘토산당 뱀’에 대한 전설의 영향 때문에 토산 사람들은 집집마다 ‘뱀신’을 모시는 줄 알고, 방을 잘 안 빌려주더라는 하소연이었다. 이런 오해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산 처녀들이 시집가는데 영향을 줬다고 한다.

 

# 토산봉, 토산봉수

토산리 주변엔 오름이 셋 있는데, 동쪽 표고 200m 가세오름, 가운데 알오름인 141.9m의 북망산, 서쪽 175.4m의 토산봉이다. 능선으로 올레길이 나 있는 토산봉은 과거 봉수가 있었기 때문에 ‘망오름’, 또 ‘탐라순력도’에 나와 있는 이름인 ‘토산망(土山望)’으로도 부른다.

재선충으로 베어졌지만 커다란 소나무가 많았고 그 사이에 상록활엽수인 참식나무, 녹나무, 생달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무성하다.

지금은 오름 곳곳 바닥에 자금우와 백량금이 널리 퍼져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보춘화(춘란)가 땅을 덮을 정도로 많이 있는 것을 봤는데, 이제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게 돼버려 안타깝다.

봉수터도 말끔하게 단장하고 목책을 둘렀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소나무 서너 그루가 그 위에 자리 잡고 가시덤불이 우거져 볼품없었다. 지금은 주민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 이곳저곳 산책로도 닦고 운동기구까지 설치해 어느 공원 부럽지 않게 됐다.

 

#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토산봉 북쪽으로 올라 동쪽 정상부 정자를 거쳐 서쪽으로 내리면, 길 건너 거슨새미 입구에 이르게 된다. 다시 숲길을 걸어 조금 더 내려가면 지금은 물이 많이 말라버렸지만 거슨새미에 이르게 된다. 거슨새미는 3단계로 분리돼 있는데, 그 아래쪽에 못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물이 바다로 흐르지 않고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흘러 ‘거슨새미’라 하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제주섬에 날개 돋은 장수가 태어났다. 그 소문은 점점 퍼지기 시작해 중국 황실까지 전해져, 황제는 두려운 마음에 호종단(胡宗旦)을 급파시켜 산혈(山穴)과 물혈(水穴)을 모두 뜨고 오도록 지시했다.

구좌읍 종달포구로 들어온 호종단은 명혈을 뜨기 시작해 토산리에 이를 무렵에 이 마을 너븐밧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어떤 고운 처녀가 달려와 “저 샘물을 놋그릇(행기)에 떠다 길마 밑에 잠시만 숨겨 주세요”라고 했다.

농부가 그 말대로 샘으로 달려가 물을 떠다가 길마 밑에 숨기자 처녀는 얼른 그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 처녀가 바로 샘의 수신(水神)이었다. 농부가 다시 밭을 가는데, 호종단이 책 한 권을 들고 다가오더니 ‘꼬부랑 낭 아래 헹기물’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런 물은 없다고 하니까, 이곳저곳 다시 살피더니 가지고 있는 술서인 산록(山錄)이 틀렸다고 태워버리고 서쪽으로 가버렸다.

그래서 지금 종달리에서 세화리까지는 호종단이 물혈을 모두 떠버려 생수가 솟는 곳이 없지만, 이 마을의 거슨새미와 노단새미만은 다행이 남아서 지금도 물이 솟고 있다는 것이다.

 

# 삼천도지법궁을 지나 영천사까지

거슨새미를 지나 조금 걷다 왼쪽으로 접어드니, 온통 노란색을 칠한 건물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나중에 지도를 찾아봤더니 ‘삼천도지법궁’이라 나와 있다. 디지털 제주시문화대전에 ‘삼천교는 1963년 제주인 고대오가 창시한 신종교로, 제주, 서울, 부산 등지에 6개의 교당과 3000여 명의 신도들을 갖고 있는데, 개인 제사를 폐지하고 모든 교인들의 합동 제사만 4월 17일에 지낸다. 장례법이 특이한데, 일체 음식 진설이 없고 꽃으로만 제상(祭床)을 장식한다’고 나와 있다.

그곳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드니 바로 영천사(靈泉寺)다. 언제 했는지 절과 노단새미 주변을 잘 정리해 휴식공간으로 만들었다.

영천사는 한국불교태고종 제주교구 소속 사찰로 1934년 2월 23일에 창건했다. 동쪽에 노단새미가 있는데, 수량이 매우 풍부해 토산리 뿐만 아니라 인근 마을인 세화·가시·고수·여은네 등의 마을에 식수를 제공할 정도였다고 한다. ‘노단’은 ‘오른쪽’을 말하는 것으로 바른 방향(바다)으로 흐른다는 뜻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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