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번호 503호, 예고된 順次(순차)였을까
수인번호 503호, 예고된 順次(순차)였을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4.02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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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백호기 함성이 오라벌을 뒤흔들고 제주시 전농로의 밤이 벚꽃잔치로 하얗게 물든 날.

TV에서는 전직 대통령의 서울구치소 수감장면이 종일 방영되고 있었다.

“아버지가 있어요, 어머니가 있어요? 그렇다고 서방이 있어요, 자식이라도 있어요? 불쌍해서 잠을 못자겠어요.”

식당 할머니는 TV를 보다가 말고, 얼굴을 좀 아는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 대통령의 딸이었다가 대통령이 되었던 여성. 할머니는 그녀의 성공과 몰락을 1950~60년대 신파조(新派調) 노래처럼 풀어냈다.

명멸(明滅)…. 그렇다.  수인번호 503번 박근혜 이야기다. 탄핵을 지지했든 탄핵을 반대했든 간에, 박근혜의 구속영장 집행에 마음이 편했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꼭 이렇게 돼야 했나…. 그녀를 구속시켜야 했느냐 구속하지 말아야 했느냐하는 말이 아니다. 한국의 제18대 대통령 취임과 퇴임까지 4년여 시·공간이 이럴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자문(自問)이다. 

▲한국정치사의 이 대형사고는 꼭 일어나야만 했을까.
큰 사고는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나타난다고 한다.

미국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수많은 재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미있는 통계학적 규칙을 찾아냈다. 평균적으로 한건의 큰 사고(major incident)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minor incident)가 발생하고, 300번의 잠재적 징후(near misses)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1:29:300의 법칙’이다.

한 마디로 대형사고는 예고된 재앙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이 법칙은 산업 재해는 물론이고, 개인의 사고 및 사회경제적 위기 등에도 널리 인용된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예고된 재앙이었을까? 하인리히는 대형사고 발생까지 5단계의 사건이 도미노처럼 순차적(順次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앞선 단계에서 적절히 대처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5단계는 다음과 같다.
제1단계는 사회적 환경과 유전적 요소(선천적 결함), 제2단계가 개인적 결함, 제3단계는 불안정한 행동 및 불안전한 상태. 그리고 제4단계는 사고 발생이고, 제5단계는 재해(災害)다.

박근혜는 어려서부터 27세까지 청와대에서 자랐다. 세상을 모르다시피한 ‘공주’였고 최태민이라는 괴인(怪人)과 밀접한 사이였다. ‘수첩공주’란 말을 들으면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아래 정치인으로 성장, 마침내 대통령이 됐다. 여기까지가 제1~제2단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취임초부터 ‘불통(不通)’이었다. 권력을 독점하려 했고, 권력 행사가 여론과 무관하게 관철돼야 한다고 믿는 것처럼 행동했다. 자신의 선의와 원칙을 지나치게 앞세웠다. 국회나 언론,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겨우 임기의 4분의 1이 지나자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기까지 제3단계였다.

제4단계에서는 윤창중 파문이 터지고 이어서 청와대 문고리 3인방, 십상시사건이 꼬리를 물었다. 최순실의 전 남편 ‘정윤회 문건’도 터져나왔다. 마침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제5단계 순차는 수인번호 503번…. 하인리히의 법칙, 그대로다.

▲법칙의 핵심은 제3단계의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를 제거하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는데 있다. 그런데 이 3단계 상태를 돌파할 참모(參謀)가 없었다. 카톡 문자도 ‘네’와 ‘네^^’의 의미가 다르고, 직접 만나 상대방의 표정이나 눈빛이 전하는 의미가 다른 데 몇 장짜리 문서와 전화 통화만으로 소통(疏通)을 다 했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다. ‘정윤회 문건 파문’에서 보듯 근 1년 동안 청와대 내 비서들 간에 쉬쉬하고 저들끼리 희희낙낙했음에도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조선 태종(太宗)은 ‘말을 구한다’는 뜻의 구언(求言) 제도를 만들어 자신을 비판하는 글을 직접 구했다. 이것을 ‘응지상소(應旨上疏)’라고 하는데 어떤 말을 써도 처벌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임금인들 비판이 달가울 수는 없다. 소통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하는 것이다. 끼리끼리 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박근혜 참모들은 밥을 먹어도 끼리끼리, 술을 먹어도 끼리끼리였으니…. 더 이상 무얼 바라랴. 터질 일이 터졌을 뿐이다.

불쌍한 사람은 잠을 못잔 전농로 식당 할머니, 착하고 순한 우리 국민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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