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소리 풍시조, 좋은 시절이 왔으면
쓴 소리 풍시조, 좋은 시절이 왔으면
  • 제주일보
  • 승인 2017.03.30 1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영준. 서울제주도민회 자문위원 / 수필가 / 시인

“책 잘 받았네, 이거 괜찮아?” 연하장을 대신하여 고향 동창 Y에게 근간 ‘풍시조 20호’를 보냈더니, 그 친구가 보내온 걱정이다.

그 책 안에는 필자의 졸고 풍시조 20편이 들어 있다. 친구는 시, 시조를 늘 읽는다. 서예작품에도 시조를 써 넣는 정도이며 해설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지만 ‘풍시조’는 낯설어 했다.

풍시조가 오랜 세월 우리의 문학장르에서 이어져 온 것도 아니니 생소하기 마련이다.

시조(時調)는 곡조를 맞추어 부를 수 있는 단가의 한 가지로 우리 민족의 성미에 맞는 삼사조다.

반면 풍시조(諷詩調)는 15여 년 전 원로 박진환 시인(80)이 개척한 시의 한 장르다.

박 시인의 설명을 인용한다면 풍시조는 ‘풍자의 어투로 쓴 3행시’를 일컫는다. 시조와 유사한 3행이라는 틀을 갖고 있지만 율격에서 자유로운 ‘자유시’라 할 수 있다. 풍시조가 갖는 풍자와 해학, 야유, 조소(비웃음), 비아냥 등은 타락하고 추악한 현실을 거부하는 청량제라 할 수 있다.

풍시조가 세상을 향해 쓴소리를 쏟아내면서도 달달한 위트로 웃음을 선사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통쾌한 일이 아닌가! 언론에서는 ‘풍시조로 세상을 콕콕’이라 제목을 달기도 했다.

그러니 고향 친구가 갑자기 나타난 필자의 풍시조를 읽으면서 시대상을 풍자(비판)한 3행시에 걱정을 보냈고 “새롭게 공부하는 문학이니 안심하게”라는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서울 홍제동 무악재역 근처에 월간 조선문학사가 있다. 발행인 겸 주간인 박진환 시인은 ‘조선문학’을 비롯해 ‘조선문단’, ‘풍시조’ 그리고 월 평균 시집 3~4권 정도 편집을 맡아 발간한다. 좁은 공간을 활용, 시 창작 과정을 개설해 토론식 강의도 진행한다. ‘풍시조’는 강의주제다.

박 시인은 하루에 풍시조 10편씩을 쓴다. 2년 사이 8600여 편을 86권으로 펴냈다. 시인은 “신문을 정독하며 매일 열 개씩 소재를 찾아서 형상화했다”고 창작 배경을 설명한다.

조신권 연세대 명예교수는 박 시인의 풍시조에 대해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 악과 어리석음 등을 헐뜯고 야유하며 질책하는 동시에 그런 풍자를 통해 그 사회악을 교정하고자 하는 시적인 의료행위”라고 평했다.

또 허영자 시인은 “부정을 위한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이 풍시조의 기본정신이다”고 평했다.

풍시조 강의와 토론과정을 거치는 기간에 많은 시인들은 ‘풍시조 시집’ 단행본을 내놨다. ‘풍시조문학상’도 탄생했다. 풍시조 시인들은 시대적 부조리나 비리, 부정부패는 물론 문명에 의한 제반, 악의 요소들과 정면으로 맞서 이에 대한 복수의 감행을 자처한다. 몇 년동안 강의실에서 풍시조를 들었다. 문학지에 발표된 필자의 풍시조를 빌려 본다.

“-어쩌다 ‘3란의 섬’으로-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하여 ‘3무의 제주 섬’에 / 쓰레기 하수 교통문제로 ‘3란의 섬’으로 돌변했다니 / 이게 다 관광객 유치에만 골몰하다 불어 닥친 후유증.”

제주 도지사, 행정시장 모두가 쓰레기 처리에 골몰하는 현실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표현했다.

필자가 사는 곳은 일요일에 쓰레기를 분류해 내 놓으면 월요일 오전에 차량이 모두 수거해 간다. 쓰레기 문제로 주민들의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다. 3무의 청정 제주가 서울의 복잡한 주거지만 못한 상황을 개탄한 풍시조다.

언젠가 박 시인은 “물 좋은 정읍에서 막걸리가 왔네.”라며 필자를 불렀다. 무악재 뒷 골목 식당에서 둘은 “풍시조를 사랑하는 시인들이 늘어나 기쁜 일이나 너무 세태를 꼬집어 안타깝다”고 입을 모았다. 어서 좋은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정유년, 해학이 넘치는 풍시조를 위해서 말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