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롤 모델’
쓰러진 ‘롤 모델’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7.03.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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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정흥남 기자] 흔히 쓰는 고사성어 가운데 미봉책(彌縫策)이라는 말이 있다. ‘미봉’의 원래 뜻은 옷감의 터진 부분을 깁고 꿰매는 것을 말한다.

옷이 찢어지거나 옷 솔기가 터지면 깁고 꿰매서 다시 입을 수 있다. 찢어지거나 터진 것을 꿰매 원래대로 합쳐 놓는 것은 봉합이다. 이를 도와주는 기계가 재봉틀이다.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 장공(莊公)이 주(周)나라 환왕(桓王)과 싸울 때 둥근 진을 짠 뒤 전차를 앞세우고 그 뒤를 보병이 따르게 했다. 여기서 나온 게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보병이 전차부대의 틈을 연결시키는 오승미봉(伍承彌縫)의 전법이다.

이게 미봉책의 시작이다. 이 미봉책으로 장공은 수적 열세를 딛고 환왕의 군대를 물리쳤다. 미봉이란 이처럼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하는 조금도 빈틈없는 전투 포석이었다. 지금은 그 뜻이 변질돼 아랫돌 빼어 윗돌을 막는 임시변통의 입막음용 꾀라는 뜻으로 굳어졌다.

서귀포시 예래동 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이 결국 외국인투자지역에서 해제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외국인투자위원회를 열어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지정 해제의 안을 의결했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규모 외자유치 성공의 ‘롤 모델’로 추앙받았던 예래휴양단지 사업이 ‘실패’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게 됐다.

 

#소수의견 무시가 출발점

예래휴양단지가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소수 토지주들의 의견이 배제된 데서 출발한다. 사업초기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토지 수용에 반발하는 토지주들을 어떤 형태로든 끌어안고 갔어야 했다. 예래휴양단지 토지수용이 위법하다고 선고한 대법원 판결문이 이를 증명한다.

“서귀포시장은 국토계획법 등 규정 상 유원지의 의미가 분명함에도 합리적 근거 없이 처분 요건이 충족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인가 처분을 했다. 이 인가처분은 그 하자가 중대·명백해 당연 무효이고, 당연 무효인 이 사건 인가 처분에 기초한 수용재결도 무효라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

2015년 2월 대법원 제 1부(재판장 대법관 김용덕·주심 대법관 김소영)가 판시한 예래휴양형주거단지 개발 사업과 관련, 토지수용을 당한 주민들이 제기한 ‘토지수용재결처분 취소 등 청구소송’ 상고심 선고공판 판결문의 일부다.

국토계획법에 의한 유원지 사업은 ‘국민의 복지 향상을 위해 오락과 휴양 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이 때문에 유원지는 도시계획시설로, 사업을 위해 토지수용이 허용된다. 사실상 사유재산권 침해인 토지 수용은 공공이 추구해야 하는 이익의 가치가 개인의 이익보다 월등하게 클 경우에 한해 지극히 제한적 범위 내에서 허용된다.

그런데 예래휴양단지는 앞뒤가 바뀌었다. ‘국민의 복지향상’이라는 공공성은 뒷전에 밀리고 외국자본 유치가 전면에 나섰다. 그 결과 일을 그르친 것이다.

 

#법 개정도 결국 미봉책

“다행히 19대 국회 마지막 날 유원지 특례 허용을 담은 제주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돼 예래휴양형단지 현안 해소에 숨통이 트였다. 투자 유치에만 급급해서 벌어진 잘못된 일을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하겠다.” 지난해 6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서귀포시민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한 말이다.

예래휴양단지는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적어도 ‘법적해결의 길’이 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법적 해결의 길 역시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따른다.

토지주들은 법 개정이 이뤄진 뒤 법원에 도시계획시설사업 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인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제주도는 지난해 5월 제주특별법이 개정된 직후 “국회 심의과정에서 부가된 부대조건을 철저히 이행해 유원지 공공성을 강화하고 관광개발의 지역사회 기여도를 높이겠다”며 “도민과 환경단체, 토지주, 제주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염려를 깊이 유념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를 제기한 토지주들은 반발하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문제를 풀어야 하지만, 현재로선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그러는 새 예래휴양단지는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제주도의 대외신인도까지 끌어안은 채.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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