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대할망께 인사 여쭙고 '늘짝 늘짝' 해안 돌길 거닐고
설문대할망께 인사 여쭙고 '늘짝 늘짝' 해안 돌길 거닐고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27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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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12. 올레 제4코스(표선해변~남원포구) -표선해변~토산산책로(7.4㎞)
올레 4코스 당캐 포구를 벗어나면 암반지대와 돌무더기가 넓게 펼쳐진 바윗길이 나타난다. 제주의 돌길을 한 번 걸어보라는 배려라고 생각된다. 사진은 자위대동산에서 바라본 표선해안.

[제주일보] # 제주민속촌, 1890년대 ‘제주의 모습’

표선민속촌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서울에서 올레길 4코스를 걷기 위해 왔다는 두 명의 대학생을 만났다. 두 차례 와서 올레 3코스까지 걷고 세 번째인데, 바다가 좋고 제주를 더 알고 싶어졌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다가 “제주를 너무 단편적으로 보다보니, 뭐가 뭔지 헷갈린다”며 “어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곳이 없을까요?”라고 묻는다. 퍼뜩 생각나는 게 지금 가고 있는 4코스 출발점에 있는 ‘제주민속촌’이다.

사실 올레길을 걸으며 제주민속촌까지 돌아본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워낙 광범위해서 한 바퀴 제대로 돌고 공연까지 보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리기 때문이다. 제주민속촌은 ‘제주에서 가장 제주다운 곳’으로 조선 말기인 1890년대 제주도 옛 문화와 역사를 원형 그대로 생생하게 보존해 놓았다.

얘기를 듣고 난 학생들은 고맙다면서 “올레길 다 못 걸으면 어때요. 어디서든지 목표만 충족시키면 그만이지요”라고 한다. 마침 제주공항을 오가는 버스 종착점이자 출발점이어서 핑계에 오늘은 지난번에 못 돌아본 해변에 가서 맛있는 것 찾아먹고 느긋하게 즐기고 가겠노라 했다.

# 당캐 세명주할망당

오랜만에 세명주할망당을 찾는데 헷갈린다. 포구 머리에 있어 쉽게 찾았었는데, 해양경찰 출장소와 다른 건물들이 들어서버려 한참 돌아가야 했다. 사실 이 할망당은 올레코스에 면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 방식은 당캐에 왔으니 당할머님께 인사를 하고 가야 개운한 법이다. 아침에 벌써 손님이 다녀갔는지 향냄새가 남아 있다. 문을 잠그지 않은 대신, ‘이곳은 관리인이 없으므로 깨끗하게 사용하시고 성불 받으십서’라고 써 붙였다.

사실 세명주할망은 제주 창조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의 다른 이름이다. 거인이면서 속옷을 만들어 주면 육지로 다리를 놓아 주기로 했다가 한 통 모자라 못했다는 것이나, 오백장군 아들을 위해 죽을 쑤다 솥에 빠져 죽었다는 신화소는 거의 그대로다.

이 마을 전설에는 ‘지금의 표선해수욕장 자리는 깊은 바다였고, 남초곶은 아름드리나무들이 들어서 있는 큰 숲이었는데, 세명주할망이 그 나무를 베어다 바다를 메워 모래해변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주목사가 와서 당을 허물라고 할 때, 큰 배를 끌어들이는 영험을 보여 이를 면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 할망당은 해신당으로 초하루와 보름에 돼지머리를 올려 제를 지내며, 해상의 안전을 관장하고 지켜주는 마을 생업수호신의 좌정한 곳이다.

 

당캐 세명주할망당

# 황무지 같은 돌길을 지나

한라산과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용암이 이곳까지 흘러오면서 속도가 느려져 천천히 굳어졌는지 모르지만, 이곳은 암반지대와 돌무더기가 넓게 펼쳐졌다. 포구를 벗어나 바윗길을 걸어 나오도록 한 것은 제주의 돌길을 한 번 걸어보라는 배려이리라.

돌길 끝에 2단으로 쌓은 돌무더기가 있어 ‘소마로연대는 여기가 아닌데…’하며, 올레길 쓰레기를 줍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자위대동산’으로 2차대전 때 돌을 운반 해다가 높게 망대를 지었던 곳이란다.

이어 돌로 지은 둥근 초가집 모양의 해녀탈의장 옆을 지나 등대를 옆으로 해, 오른쪽 해변로를 따라간다. 폭넓은 돌무더기 위에 모래가 조금 깔리고 길 가까이엔 풀밭이다. 순비기나무와 띠로 덮인 곳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유카 몇 그루는 아직 마른 꽃대를 지우지 않았다. 이어진 해녀상과 물허벅 여인상도 여염집 아낙네의 투박한 모습 그대로다.

# 갯늪과 귀영구석

그곳을 지나서부터 해안도로 안쪽이 길이다. 소나무와 띠, 순비기나무가 이어지고, 사이사이 보리밥나무, 사철나무, 까마귀쪽나무, 우묵사스레피나무가 섞인 길을 걸어 나와 동하동 해녀식당을 지난다. 한참 동안 해안도로를 걸어가니, 이번엔 ‘갯늪’이다. 늪이라고는 하나 바다와 연결돼 있고, 테우 정도 맬 수 있는 곳이다. 이어 속칭 귀영구석이라고 하는 곳에 쉼터동산을 조성하고, 황근을 복원하면서 이 고장 출신 송상 시인의 시비를 세웠다.

‘곧은길은 귀영구석 길이 아니다/ 갯바위로 에두른 올레길을 밟으면서/ 우리들 삶이 닮아온 것이다/ 낯선 사람들이 굽어간 길목마다/ 바람은 누이 손톱 같은 갯찔레꽃을/ 환장하게 피워내는데/ 우리들의 얼굴을 닮았던 길은/ 기억의 방에서 하얗게 비워지고 있다/ 누가 귀영구석 길을 허물어 왔을까/ 뭍이 그리운 밀물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돌담으로 경계 그은 신작로 길섶에/ 면직원이 뿌려 놓은 유채꽃들이/ 당포를 향해 목을 빼들고/ 화르르 화르르/ 우울증을 털어내고 있다’

-송상 ‘기억 너머의 귀영구석’ 모두

 

# 가마리개를 지나 토산산책로로

민속해안로를 따라 해비치호텔 옆에서부터 시작되는 4코스 휠체어 구간은 세화2리 해녀의 집에서 멈춘다. 해안가 평평한 지형을 따라 이어진 도로변에 따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한 곳이다. 이어진 가마리개는 세화2리의 관문 역할을 한다. ‘가마리’는 포구의 머리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뜻인 ‘갯머리’의 변형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제 세화2리로 바뀌었는데도 그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가마수산을 지나면서부터는 어째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대나무와 우묵사스레피나무 숲으로 들어가기 전에 ‘막다른 길, 진입금지’란 간판을 보아서인지, 그것이 차가 갈 수 없다는 말인 줄 알면서도 께름칙하다. 그로 보면 우리가 쓰는 말이 참 예민하단 생각이 든다. 까마귀쪽나무, 돈나무, 보리밥나무가 뒤엉킨 숲을 지나자 농협 신축공사장이 나타나고, 그곳 다음엔 해병대길과 토산산책로가 이어진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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