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들아, 내가 바보인줄 아니?”
“이 바보들아, 내가 바보인줄 아니?”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3.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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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러시아 농담 한 토막. “모스크바에서 어떤 사람이 ‘흐루쇼프는 바보다!’를 외치다가 체포돼서 징역 23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가원수 모독죄 3년, 국가기밀 누설죄 20년을 합친 것이다.”

흐루쇼프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 재임중 이던 1960년대는 공포의 시대라 할만치 그는 비판자들을 가차없이 처형했다. 그런데 ‘흐루쇼프=바보’ 농담을 만든 사람이 바로 흐루쇼프 본인이라는 말이 있다.

그는 솔직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언행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미지가 수더분하고 바보같이 좀 멍청해보였다. 그가 일부러 그랬을까?

이런 우화(寓話)가 있다. 언젠가 바보들이 행진을 하고 있었다. 바보들은 대열의 맨 앞에서 자신들을 이끄는 사람의 수더분한 뒷모습만 보고 그도 역시 바보이리라 믿었다. 하지만 선두의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이렇게 비웃었다. “이 바보들아, 내가 바보인 줄 아니?”

▲지금은 타계했지만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장을 지낸 원로가 일본에서 들은 얘기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정치인으로 대성하려면 모름지기 ‘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요 실탄이 있어야지요”했더니 “에이 바보, 그게 아니라니까…”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렇게 설명했다. ‘돈’이란 건 일본말로 ‘돈(鈍)’. 어리석을 둔(鈍)자를 일본말로 ’돈‘으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좀 바보같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래야 스토리(이야기)가 생기고, 다소 어리숙하게 보이고 우직한 인상을 줘야 이야기가 생기고 유권자의 호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마을에 ‘바보’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 바보를 놀려주기 위해서 손바닥에 1000원짜리와 1만원짜리 돈을 놓고서 맘대로 집어가라고 하면 항상 1000원짜리만 집어갔다. 어느 날,  한 어른이 “이 사람아, 1000원짜리보다 1만원짜리가 더 크다. 다음부터는 1만원짜리를 잡으려무나” 하고 일러줬다. 이 말에 바보는 싱긋 웃으면서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제가 1만원짜리를 집으면 다시는 그런 장난을 안 할 거예요. 안 그런가요?” “그렇겠지….” “그러면 저는 돈을 못 벌잖아요.”

▲이런 ‘바보론’에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분이 씩 웃으면서 “아니, 그렇다고 진짜 바보는 곤란해” 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난 날 노사모의 ‘바보 노무현’ 구호도 이 같은 맥락이 아니었을까.
잇단 낙선을 무릅쓰고 부산 출마를 강행했던 노 후보의 ‘천진난만한 지역감정 타파 열정’을 부각시키는 데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반어적 표현이 없었다. 물론 노 대통령은 결코 진짜 바보는 아니다. 오히려 정치와 선거에 관한 한 본인의 자부처럼 아주 고단수 전문가라 할 만하다.

이번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정국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정국을 비교해 생각해보면 그렇다.
당시 노무현의 절묘한 뒤집기 승부수를 보면 ‘정치 9단’이라는 찬탄도 지나칠 게 없다. 아마 그는 탄핵이 기각되자 “내가 바보인 줄 아니?” 하지 않았을까. 5월 ‘장미대선’이 끝나고 보름쯤 지나면 노무현 8주기다. 그는 유서에 검찰이 제시한 혐의를 부인하는 말을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

▲바보들은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호아킴 데 포사다’의 책 ‘바보 빅터’에 나오는 말이다.
“…스마트한 애들에겐 뇌가 있지만 바보들에겐 배짱이 있지, 스마트에게는 계획이 있지만 바보에게는 이야기가 있지. 스마트한 이들은 비판을 하지만 바보는 행동을 하지, 당신은 바보들을 앞설 수 없다. 바보는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른다. ‘머리’보다 ‘심장’의 명령을 따르는 바보들의 별난 ‘배짱’과 기발한 ‘이야기’가….”

5월은 ‘심쿵’. 겨울을 이겨낸 신록(新綠)으로 다시 푸르른 이야기가 있는 달이다.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고, 바보같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아둥바둥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바보같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앞으로 나가고 변화해 간다. 그게 역사다.

세상에 영합하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이 바뀔 가능성이 없지 않은가. 그나마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것은 이 세상을 우리에게 맞추려는 바보가 있어서이다. 세상은 정말 바보같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한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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