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다 포크레인
대학보다 포크레인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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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제주일보] 10년 전 대학에서 산학협력과정의 일환으로 한동안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자본주의 경제활동은 불황·회복·호황·후퇴 등 4개 국면이 순환하는 상승과 하강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경기 순환의 과정을 설명하며 지금은 불황기이고 이제 곧 여러분들이 취업할 때가 되면 회복기로 접어들 것이니 열심히 하기만 하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 얘기했다. 그러나 경기침체가 계속 이어지면서 나의 설명은 점점 비관적으로 바뀌어 갔다. 지금은 경기 연착륙 중이다. L자형 국면이다. 세계 경제가 침체의 강에 빠져 있으며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 모두는 무한긍정을 유지하며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 여기고 있다.

사회비평가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을 통해 긍정주의는 개인을 넘어서 전 세계에 닥친 위기의 징후에 눈감게 만들어 재앙에 대비하는 힘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실패의 책임을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림으로써 시장경제의 잔인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껏 우리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기회는 온다고 믿었다. 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우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착각이 ‘인고의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유례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독점하는 그룹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지켜 본 부모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자식교육에 열을 올렸다는 것이다. 허 교수는 모든 사람이 가야한다고 말하는 그 길은 모두가 죽는 길이라고 말한다. 다음 세대만이라도 실패하지 않으려면 방향을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 억원의 교육비를 들여가며 대학을 보낸 큰 아들은 정작 취업 장벽에 막혀 결국에는 포크레인 기사로 취직하고, 작은 아들에게는 일찌감치 공부 포기를 유도하고 교육비 대신 포크레인 두 대를 사주었다는 ‘포크레인의 비유’가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무한긍정으로 시키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기업가가 공장을 세우면 와서 일해 줄 잘 훈육된 노동자가 필요한 시대에는 공부 잘하는 큰 아들이 더 많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공장이 하나 둘 사라지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작은 아들들이 더 필요한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인성 좋은 아이로 여겨지는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너무 많은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제주도교육청이 2017학년도 도내 중·고등학교에 적용될 학업성적관리 지침으로 교과 학습평가는 학교 교육과정의 범위와 수준을 벗어난 내용을 출제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수행평가 의무비율을 중학교는 전체 교과 성적의 40% 이상, 고등학교는 30% 이상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필자는 일전에 고입선발고사 제도 개선 관련 토론회에서 객관성을 우려해 수행평가를 계량화하거나 비율을 낮추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인재를 평가하는 방법 그대로 지필고사 성적보다는 주관적 수행평가가 더 실질적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수행평가가 수업활동에 어떻게 참여하는지, 그 과정을 통해 얼마나 성장하는 지를 수업과정 중 평가하게 될 것이라는 교육청의 말대로 기존의 과제중심 평가가 아닌 과정중심으로 잘 지켜줄 수 있어야 한다.

수행평가를 다시 점수로 환산하며 어느 학원으로 보낼까 고민하는 부모님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구글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질문하는 내용이다. 질문이 시사하는 바는 ‘당신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 ‘세상의 난제를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가?’ 이다. 난제를 발견하는 눈과 해결 능력에 따라 사회적 보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 방식이 제대로 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가? 무조건 공부만 하라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로서 자문해 보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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