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산책
제주어 산책
  • 제주일보
  • 승인 2017.03.2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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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훈식. 제주어보전육성위원 / 시인

제주어를 아끼는 제주도 사람들은 시인이나 다름없다.

 

무엇인가를 숨기느라고 숨겼지만 주짝허게 나오면 들통이 나고 만다. 또한 옆에서 조짝허게 말참견을 하는 모양새나, 쪼지래기 나타난 모양도 얼마나 감춤이 허술한지 그냥 눈에 다 보인다. 거기다가 갑자기 눈앞에서 두려운 것이 나타날 때는 보호 본능으로 줌짝허게 놀라고, 두렁청엇이 천둥벼락 같은 뇌성이 치거나, 누가 뒤에서 자락 밀어버리면 추물락허게 놀란다는 표현도 무척이나 시적이다. 무엇인가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를 자륵탁이라고 하는데 비교할 표준어가 없어 오히려 즐거운데 퉁글랑은 ‘덜커덩’이다.

 

주름이 자글자글, 빚이 지랑지랑, 나타나선 안 될 사람이 주에기 나타서 밉상인데 얼른 가지도 아니하고 질그랭이 오래 있으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사람이 누워 있는 모양도 가지가지다. 쓰러지다는 자빠지다. 얼마나 아니꼬웠으면 ‘지랄허고 자빠졌네’라고 불만을 나타내겠는가. 걸러지다는 들어눕다이고 길을 가다가 헛디뎌 넘어진 것은 푸더지다로, 빈듯하게 누운 모양은 갈라지다이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죽다가 대싸지다이다. 대싸지다는 뒤집어진 상태인데 비아냥거림으로 잘 죽었다는 거다.

 

발을 다쳐서 절룩거리며 걷는 의태어는 자울락자울락이다. 말대꾸도 여러 가지다. 자작자작은 쉬지 않고 재잘거리는 거고, 대근대근은 말끝마다 얄밉게 대답하는 의성어이며, 뻬락뻬락은 어떤 말에 성질이 나서 일부러 부아를 돋우는 말대꾸다. 붕붕허다는 불만이 있어도 맞대응을 못하니까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고, 작작허다는 여러 사람이 말을 거침없이 쏘아대는 모양인데 이 지경에 이르면 동네가 다 벌러진다. 벌러진다는 항아리 같은 것이 깨어진다는 메시지이다. 그래서 ‘무사 영 동네가 벌러지게 웨울럼수과 속솜헙써’라고 달랜다. 속솜허다는 표준어로 ‘잠자코’이다. 잠자코를 구태여 풀이하면 코를 골면서 자고 있은 것처럼 입을 다물라는 뜻인데, 속솜허라는 숨소리조차 나지 많도록 속으로 숨을 쉬라는 엄중 경고이다.

 

작작은 줄이나 획을 함부로 긋는 의성어로 종이나 천 따위를 마구 찢는 소리이고, 잘락은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을 끼얹는 거고, 잘잘은 항아리가 터져서 물이 줄줄이 흘러나오는 모양에다가 몸에 지닌 것을 잘 빠뜨리거나 흘리고 다닌다는 핀잔이다.

 

장석허다라는 동사도 있다. 몸이 편안치 못하여 신음하거나 무거운 것을 들 적에 끙끙거리면서 내는 소리라는데 어디서 유래된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장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장저를지다는 상당한 기간 동안 잇따라 바쁘다는 의미인데 속뜻을 알아짐직허다, 그러니까 저를지다에서 한자 길 장(長)을 접두어로 붙인 임기응변이다. 얼마나 바빴으면 빨리빨리 하라고 독촉할 것을 빨이라는 된소리조차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제주도 사람들은 재기재기 하라고 다울린거다. 그도 성에 안 차면 확 오라고 다그쳤다, ‘확’은 바람이 세게 한바탕 부는 모양과. 잠자코 있다가 날래게 덤비는 모양을 겸비한 의태어이다.

 

젓가심이 있고, 젯가심이 있다. 젓가심은 보통 젖가슴인데 반하여 젯가심은 할망 가슴을 의미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발음하기 쉬운 형태를 주로 따랐지만 젖만큼은 나오지 아니하는 젯이라고 하지 않고 정성들여 젓 먹으라고 발음하였다.

 

아무튼 제주어는 저프다. 저프다는 의미는 보통에서 아주 뛰어나 혀를 내두를 지경을 일컫는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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