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칠 더해진 ‘청춘 사랑방’, 제주 문화에 색을 입히다
붓칠 더해진 ‘청춘 사랑방’, 제주 문화에 색을 입히다
  • 고현영 기자
  • 승인 2017.03.21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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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들 작품 전시로 미술 대중화 이끌어
1968년 제주신문사(제주일보 전신) 앞길. 현재 제주북초등학교 인근으로, 당시 제주신문사 맞은편에 뉴욕다과점이 있었다.

노오란 샤쓰 입은 말 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그이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이 쏠려 / 아아~ 야릇한 마음 처음 느껴본 심정, 아아~ 그이도 나를 좋아하고 계실까.(한명숙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 중)

당시 색(色)의 혁명(?)을 일으킨 이 노래가 유행하던 1961년, 딱 그때였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서울에서 미술 전공의 대학을 다니다 방학 동안 고향에 내려온 청년 화가들은 삼삼오오 빵집에 둘러 앉아 백색의 도화지 위에 시대의 고민을, 미래의 제주 문화를 하나하나 채워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진행돼 온 그 작업들은 제주 문화사의 페이지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과거의 행적들이 써 내려 온 역사는 현재의 거울이 된다. 지금의 칠성로 역시 옛 공간의 진화로 얻어낸 보존되고, 잊지말아야 할 ‘흔적’이다.

이렇게 문화가 된 골목, 칠성로는 ‘다방길’을 따라 문화예술인들을 하나 둘 불러 모으며 ‘문화 부흥기’를 맞았다.

그 시절 다방과 함께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 또 있다. 바로 빵집이다.

학생들의 출입이 까다로웠던 다방에 비해 빵집은 남녀노소 누구나 드나들기 편한 장소였으며 특히 선남선녀들의 ‘사랑방’이자 ‘미팅 장소’로도 자주 애용되던 곳이었다.

딱히 만남의 장소가 마땅치 않았던 그 시절, 시내에서 약속한 사람들은 으레 다방이나 빵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칠성로에는 오스카양과와 독일양과·뉴욕다과점이, 현재 산지천 근처에는 찐빵으로 아주 유명한 영춘빵집이 자리했다. 다른 빵집에 비해 공간 여유가 있어 미술인들의 전시장으로 자주 활용됐던 곳은 뉴욕다과점이 ‘유일무이’ 했다.

당시 다과점을 운영했던 주인의 후한 인심도 전시공간 확장에 한몫 했으리라. 빵집 곳곳에 작품들이 내걸릴 수 있도록 화가들의 요청에 흔쾌히 응해 줬기에 현재의 제주미술이, 제주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좌측)1970년대 신성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앞 남문로 일대를 청소하고 있다. 뒷편으로 소라다방이 보인다. (우측) 1973년 아리랑백화점 개점 당시 모습.

관심 있는 주변의 도움에 힘입어 서양화가 김원민은 1961년 11월 27일부터 12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뉴욕다과점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그때까지만 해도 다방에만 편중됐던 전시공간의 한정된 벽을 허무는 데 일조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전시를 알리기 위해 직접 그림을 그려 넣은 리플릿을 만들어 나누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그 이듬해 8월에는 임직순 조선대학교 교수가 제주를 찾아 같은 장소에서 서양화전을 개최했다. 시대적 상황과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중앙 화단의 작품들을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제주화단에는 교류의 물꼬를 트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렇듯 미술전도 시화전 만큼 자주 열리게 되면서 그동안 다방 DJ들의 입담 섞인 음악과 문학과만 친분을 쌓았던 도민들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림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다.

대중이 모이면 이는 곧 문화(文化)가 된다. 따라서 1950년~1970년대 칠성로 다방과 빵집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는 현재 제주문화사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제주시 원도심의 심장 박동을 세차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시 한 번 원도심의 문화 전성기 재현을 위해 옛 모습을 바탕으로 콘텐츠 이동·발굴의 노력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저녁 9시가 되면 사방이 암흑 세계와 흡사할 정도로 인적이 뜸해지는 게 원도심의 현주소이다.

동장군도 저만치 달아나 그 뒷모습은 점점 작은 점이 돼 가고, 코 끝을 간질이는 봄바람이 어느새 계절의 주인이 바뀌고 있음을 몸짓으로 알려주고 있다.

먼저 길을 걸어 준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꼬닥 꼬닥 걸어보자.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칠성로’를 중심으로 한 원도심 안에 르네상스의 바람을 몰고 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고현영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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