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궁으로 향하는 ‘전설 속 올레’…옛 해녀의 속삭임 들리는 듯
용궁으로 향하는 ‘전설 속 올레’…옛 해녀의 속삭임 들리는 듯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20 1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창집의 올레이야기-11. 올레 제3코스(온평포구~표선해변) -A·B 만남점~표선해비치해변(6.7㎞)
올레 3코스에 있는 신천목장을 지나 해안가를 향하면 ‘용궁올레’를 찾을 수 있다. 용궁올레에는 남해용궁을 다녀온 해녀 송씨와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일보] # 신풍목장에서 신천목장으로

A·B 코스가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기분으로 나머지 구간을 걷는다. 주변이 좀 어수선한 가운데 갯강활이 묵은 줄기 아래 새싹을 준비하고, 까마귀쪽나무와 우묵사스레피나무가 그런대로 푸른 기운을 돋우고 있다. 수선화는 이미 피었다 졌고, 암대극과 갯무가 모습을 갖춘 걸로 미루어 얼마 없어 꽃을 피울 기세다.

바로 신풍목장과 신천목장이 이어진다. 신풍리 땅은 한라산 쪽으로 뻗쳐 있는 대신 해안선이 짧고, 신천리는 해안지대만 넓게 차지했기 때문에 여기다 목장을 마련해야만 했지 싶다. 원나라는 고려 원종 14년(1273년)에 삼별초 군을 평정하고 제주도를 직할령으로 삼았다. 그리고 3년 뒤 몽고 말 160필을 가져다가 여기서 가까운 수산평에 목마장을 설치했는데, 아마 그 때의 목장 풍경이 이랬으리라.

 

# 유명한 경승지 신천목장

신풍목장과 신천목장 사이로 나있는 도로가 마을의 경계도 된다. 지금까지는 길을 따라 걸었지만 신천목장은 길 없는 사유지라 조심해 지나가야 한다. 여름엔 한우를 방목하고, 겨울엔 감귤껍질을 건조하는 곳이다. 안내문에는 초원과 바다가 맞닿은 아름다운 경치로 ‘각설탕’ 등 여러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이뤄졌다고 한다. 올레길을 벗어나 가축이 있는 곳이나 작업 공간으로의 접근을 삼가고, 가축방역 및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했다.

지난해 12월 말에 왔을 때는 감귤 껍질이 노랗게 널려 있어 장관이더니, 오늘은 마른 잔디만 넓게 펼쳐있어 고즈넉하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해안가는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얼마 안가 ‘창곰돌’이라는 구멍 난 바위와 용궁올레 전설이 깃들어 있는 곳을 지나게 된다.

 

# 용궁올레 전설

옛날 웃내끼에 상군해녀 송씨가 살았는데, 혼자 용궁올레에서 물질을 자주 했다. 그날도 용궁올레에서 물질을 했는데 엄청나게 큰 전복이 보여, 있는 힘을 다해 들어가 빗창을 찔러 넣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리니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이었고, 강아지가 나와 꼬리를 쳐서 따라 가보니 별천지였다.

아방궁 같은 집들이 즐비하고 오가는 사람들의 옷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호사스러웠다. 송씨가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 누구냐고 물었다. 송씨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여기는 남해용궁이라 세상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는데, 만일 용왕이 알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면서, “도와줄 테니 어서 인간 세상으로 나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송씨가 막 용궁을 벗어날 무렵 아름다운 별천지를 한 번 더 보고 싶어, 고개를 뒤로 돌리는 순간 사방천지가 깜깜해졌다.

겨우 정신을 수습하니, 수문장이 불호령을 친다. 송씨는 나이 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데, 자신이 죽고 나면 누가 돌보느냐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수문장은 효성이 갸륵해 살려준다고 했다. 강아지가 다시 나타나 꼬리를 흔들어 뒤따라 나와 보니, 전복을 따던 곳이었다. 송씨가 나와 만세를 부르자 ‘용궁올레’ 옆에 칼날 같이 날카로운 바위가 솟아올랐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이 다시는 용궁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라 한다.

그 바위가 ‘칼날이 위로 선 모습이고, 다리처럼 이어졌다’고 해 ‘칼선다리’라 부른다.
 

신천목장 앞바다에 있는 ‘창곰돌’

# 전설 속 송 여인과의 만남

전설을 생각하며 창곰돌에 올라 용궁올레 쪽을 바라보는데, 어디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재게 이래 내려옵서. 그딘 아무나 올르는 디 아니우다.”

귀를 의심하며 내려왔는데, 해녀 한 분이 물소중이 차림으로 다소곳이 서 있다. 벌어진 옷깃 사이로 드러난 하얀 속살에서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물씬 풍긴다.

“아니, 아직도 3월인데, 고무옷도 안 입고 춥지 아니허우까?”/ “올레 도우미 제대로 허젱 허문 그 정돈 감수허여사 헙주”/ “아, 올레 도우미로구나예. 매일 이런 차림으로 나왐수가?”/ “경헐 리가 있수가?”/ “경헌디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수가?”/ “선생님이 지난해 신문에 ‘용궁올레 전설’ 써 주난 고마완 보답허젠마씀. 이젠 퇴임허여시난 하루쯤 집이 안 들어가도 뒈지예? 제주역사영 풍속이영 하간 거 밤새낭 듣고정 허우다”/ “그러면 혹시 송씨 해녀?”/ “예. 송씨인 건 맞수다. 아이고, 시간 너미 가부렀네. 강 맛좋은 거 잡아당 안네커메, 호꼼 지드립서에” 하며 살포시 걸어가는 모습이 꿈인 듯 아련해진다.

 

# 해녀 탈의장에서 표선해비치해변까지

잔뜩 기대하고 한참을 기다리다 용궁올레 주변을 살피니 아무도 안 보인다. 이거 뭣에 홀린 거 아닌가 하고, 기울어진 해를 보며 할 수 없이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얼마 안 가 해녀탈의장 곁을 지나는데, “전복이나 하나 사 먹엉 갑서!” 하는 소리가 들려 다가가 보니, 할머니가 큰 대야에 해산물을 담아 팔고 있다. 한 접시 시키고 소주병을 따서 할머니에게 따라 드리는데, ‘아뿔싸’ 조금 전에 만났던 도우미 해녀와 눈매와 입술이 너무 닮았다. 왜 그리 쳐다보느냐고 묻기에 그 해녀 얘길 했더니, 한숨을 쉬며 “시집 간 며칠 안 뒈 청상으로 돌아온 딸이 가끔 날 우치젠 허문 경 나상 허끈다”고 한다.

위로의 말을 건넨 뒤 걸음을 재촉해 길가의 고칫당을 살피고 배고픈 다리를 통과하는데, 주변에 갈매기를 비롯한 여러 새들이 몰려 있다. 천미천을 중심으로 신천과 하천리의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하천리는 올레길도 잘 가꿔 휴게소도 여러 곳에 만들었고, 황근을 복원하는 등 활기가 넘친다. 드디어 해수욕장이 나타나고 멀리 종착점 당캐포구가 보인다. 날이 늦은 관계로 바로 물이 나간 모래사장을 질러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