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
비정상의 정상화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3.1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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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신정익 기자]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들께 많은 상처를 드렸습니다. 늦었지만 헌법재판소의 엄중한 선고를 가슴깊이 받아들이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남은 법적 절차를 성실하게 따르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최소한 이 정도 수준의 사과는 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국민들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헌법이 파면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얘기다.

지난 10일 오전 11시 21분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기 위해 그가 더 이상 대통령의 직을 수행하면 안된다는 ‘역사적 결정’이다.

이틀을 아무 말 없이 청와대서 버티다 지난 12일 오후 7시쯤 청와대를 빠져 나온 그는 서울 삼청동 자택에 도착한 후 지지자들과 만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으로 끝이다.

대신 청와대 대변인을 지냈던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을 통해 간단한 입장이 전달됐다. 그것도 앞뒤가 맞지 않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가 안가는 말이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를 믿고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진실타령’이다. ‘진실’을 가리려다 파면된 그가 자주 입에 올리는 ‘진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헌재의 파면 결정이 나온 후 우리나라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되고 있다는 외신들의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통령 파면이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안정시키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 마디로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해외 투자은행들은 한국경제의 불확실성이 탄핵으로 완화돼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파면을 당한 입장에서는 매우 섭섭하고 의외의 반응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세계의 시각은 이렇다. 헌재의 판단이 좀 더 일찍 이뤄졌어야 했다는 아쉬움까지 묻어난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2일자 사설에서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에서 빛났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사설에서 “대통령 파면이 한국 민주주의와 법률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방해와 어려움을 딛고 한국은 민주주의 체계의 가장 힘든 과업 가운데 하나를 수행했다. 신속하게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유혈 쿠데타 없이 지휘봉을 넘긴 것은 민주주의를 독재와 구별하는 역량의 징표”라고 강조했다.

이쯤되면 우리 국민들의 민도(民度)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세계가 인정한 셈이다.

▲날이 지날수록 삼성동의 풍경은 가관이다. 청와대라도 옮겨온 양 ‘친박(親朴)’ 가신들이 역할을 정해 ‘호위무사’로 나서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국회에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의결되고 헌재의 파면이 이뤄져도 음습한 이념공세로 대한민국을 양분하려고 혈안인 사람들이다. 정치적인 활로를 이런 식으로 찾으면 곤란하다.

주군이 파면을 당했으면 가신들은 ‘폐족(廢族)’을 선언하고 자숙해야 한다. 이게 국민들의 명령이다.

그런데도 ‘의리’ 운운하며 삼성동 주변에서 활보하고 있다. 마치 유신시대 가택연금을 당한 민주인사의 측근들로 착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민심의 도도한 흐름과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검찰이 ‘피의자 박근혜’에게 오는 21일 오전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삼성동 안팎에서는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분위기가 나온다니 일단은 지켜볼 일이다.

그에 대한 파면은 끝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시작이다. 그가 즐겨 쓰는 ‘진실’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진실’을 토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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