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너머로 가는 길
탄핵 너머로 가는 길
  • 부남철 기자
  • 승인 2017.03.10 19: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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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남철기자]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이 10일 오전 11시21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선고재판에서 밝힌 주문이다. 우리나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그것도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말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은 2004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현직 대통령이 파면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 권한대행은 이날 “대통령의 행위가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파면으로서 얻는 헌법수호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라며 “대통령의 위헌, 위법 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라고 판시했다.

이 권한대행이 밝힌 법치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의 원리에서 비롯됐다. 영국에서 코크경이 제임스 1세와 항쟁할 때 “국왕이라 할지라도 신과 법 밑에 있다”라는 주장에서 비롯됐고 1215년의 마그나카르다, 1628년의 권리청원, 1689년의 권리장전 등을 통해 확립됐다.

우리나라에 법치주의가 도입된 것은 8·15 광복 후 민주공화국 헌법을 갖게 되면서 법치주의 원리가 도입됐다.

법치주의는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법원리로서 모든 국가권력은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국가권력의 자의에 의한 통치가능성을 배제한다.

이날 헌재 재판부는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고 있다”라며 “대통령의 행위는 최서원의 사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을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하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해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 65조 제 1항에서 탄핵소추 사유로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한다.

이는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법치국가 원리와 민주국가 원리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에 대한 적극적 위반행위와 같이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다. 다른 하나는 뇌물 수수, 부정부패 등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라는 관점에서 중대한 법 위반이다.

기자는 헌재가 박 전(前) 대통령이 이 두 가지를 모두 위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본다.

이는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 시대를 끝내고 법치주의의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지 정확히 92일만에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검찰 조사도 받아야 할 처지이다.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은 탄핵소추된 뒤 스스로 퇴진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성공은 싸움에 있다”라는 신념을 지닌 공격적인 정치인이었지만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물러났고 이런 그의 태도는 마지막 양심과 품격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직후 스스로 물러났으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국과의 사드 갈등, 북한의 미사일 도발, ‘절대위기’에 처한 경제, 진영 간 갈등….

지금 대한민국이 헤쳐나가야 할 험난한 문제들이다.

집권 기간 동안 이 문제들을 만들어 놓은 당사자는 이제 전(前) 대통령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돌아갔다.

국민들에게 어떤 죄송함도 표시하지 않은 채….

탄핵심판도, 이후 벌어질 정치적 격동도 예정된 과정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할 것이냐, 새로운 미래를 모색할 것이냐는 또 다시 우리 국민의 몫으로 남겨졌다.

긴장과 환호·한숨이 뒤덮었던 2017년 3월 10일은 저물었고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시간이다.
 

부남철 기자  bunc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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