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時) 맞추기
때(時) 맞추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0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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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호. 시인 / 전 중등교장 / 칼럼니스트

[제주일보] “선생님, 싱크로나이즈드(synchronized) 스위밍(swimming), 이 스포츠 이름을 풀이해 주시겠습니까?”

고등학교 영어수업시간, 어느 학생의 질문이 시사적이다. 때마침 어느 나라에서 하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고, 어떤 스포츠경기는 “교실수업 대신에 실황중계를 보면 안 됩니까”하고 학생들이 졸라대기도 했었다.

‘수중발레’라고 우리말로 옮겨 쓰이고 있었다. 어쩐지 번역이 모자란 듯하다. ‘시간을 맞춘 수영’이다. 시간을 맞출 짝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둘 이상이어야 한다. 즉 여럿이 시간리듬(chron)에 맞추어(同/syn) 움직인다. 여럿이나 하나의 유기체(organism)가 움직이듯 수영을 한다. 이것이 이 스포츠의 묘체(妙諦)인 것이다. 구성인원이 많을수록 각 동작의 리듬을 한 가지로 맞추기가 어렵고, 그만큼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교향곡(symphony)이 여러 관현악기가 각각의 소리(音 phon)를 ‘하나로 고르고(同 sym)’ 어우러지게 내는 음악인 것처럼,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은 물속이어도 그 동작시간(時 chron)이 음악리듬에 맞아야 하는(syn) 것이다. 덧붙이면 치료시간이 길어지는 만성(chronic)질병(disease)의 어원도 여기에 비롯된 것이다.

어느 고등학교 교무실에서 있었던 일. 아침 보충수업(0교시수업) 후에 교직원 회의가 이어진다. 선생님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는 데도 막상 회의를 진행해야 할 주번 선생님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아침 회의시간은 매우 짧았다. 시간은 선생님들의 심장처럼 콩닥콩닥 흐르는데…. 드디어 그 선생님이 나타났고, 교장선생님의 힐책(詰責)이 떨어졌다. 그 선생님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손목시계로는 늦지 않았다며 손목을 내 보였다. 그 이후로는 교직원회의가 라디오 시보에 맞추어 시작되었다.

무릇 문화란 정신활동의 사회적 산물이며, 여럿이 때(時) 맞추는(synchronizing) 데에서 비롯되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간다면 굳이 때를 맞추지 않아도 될 것이다. 때를 맞춘다는 것은 여럿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구성원끼리의 약속인 것이다. 스포츠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음악회에서의 감상처럼 관객은 스포츠의 중요한 요소이다. 올림픽경기의 개회를 비롯하여 모든 경기는 시종(始終)의 시간에 맞추어져야 한다. 서울의 옛사람들은 일상생활을 보신각(普信閣) 종소리에 맞추는 문화생활을 했었다.

인생이란 시간맞춤의 연속된 단계(sequences of life)를 디디며 걷는 것이다. 엄마 품에서 젖을 빨 때가 있고, 학교교육을 받아야 할 때가 있고, 혼인하여 가정을 꾸려갈 때가 있는 것이다. 나이(時)에 맞는 디딤 걸음을 걷는 것은 절대적 순리이다. 폐경(閉經) 후의 결혼은 출산이 없다.

스쿨(school)이란 ‘무리지어 모임’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한 곳에 모여야 가르침이 경제적이다. 이것이 학교의 시초이다. ‘한 곳에 모임(schooling)'은 반드시 시간이 같아야 한다. 그러니, 소위 홈-스쿨이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유비쿼터스(ubiquitous)교육이 한 때 일어나는 듯, 사그라진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identity)?’

함께 지내는(getting together) 사람들과 생활시간을 맞추어 보라. 날이 밝으면 학교로, 저물면 가정으로, 때(時)에 맞추어 걷고 있나 나의 걸음을 보라.

 

3월 새내기들

때맞춰 교문마다 피어

온 누리 활기차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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