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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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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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수필가

[제주일보] 씀씀이는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마음가짐이 더 문제일 것 같다. 요사이, 전에 없이 나도는 말 중에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며 태생의 위아래를 가름하는 말들을 한다. 사실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건 부모와 환경의 몫이지 자녀들 게 아니지 않은가. 이 수저 논쟁은 상층 부모에겐 갈등의 골을, 하층 부모에겐 한계선 자각의 아픈 골을 만들지 않나 싶다. 물질만능시대의 부조리한 현실이다.

돈이나 물건 등을 함부로 대한다 하여 흥청망청 쓴다는 말이 있다. 원유가 물 값보다 싸다는 사우디 태생의 한 왕자를 ‘돈을 물처럼’ 마구 쓴 금수저의 표본으로 거론하고 싶다. 그는 얼마 전, 매 80마리를 사막 지대에서 사냥 훈련을 시키려고 매의 여권까지 발급받고 비행기 표를 샀단다. 자신이 기르는 매와 같이 여객기 이코노미석 80자리를 사서 좌석마다 매를 앉히고 여행했다. 그 왕자,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두둑한 배포로 취미활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상상의 수준을 넘는 씀씀이에 놀라울 따름이다. 인생이 거반을 넘긴 나도 침이 꼴깍 넘어갈 만큼 그의 통 큰 씀씀이가 부럽다. 부모와 환경 덕에 누리는 금수저 인생이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겠다.

인간은 욕망이라는 활화산이 있기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하여 이 우주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고 있지만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려야 하는 선은 지켜야 사회적 동물로서 가치가 있는 거다. 여건이 된다고 마음 가는 대로 다 채우면 지탄받을 일이 부지기수일 게 뻔하다. 맹자는 사단(四端) 중,  옳고 그름을 아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야말로 지혜의 극치라 했다. 사우디 왕자 같은 부류도 사회적 동물이기에 제 이성이 지시에 따라야 사람값을 하게 될 터이다.

또 한 사람 씀씀이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이가 있다. 워런 버핏이다. 2006년부터 매년 약 2조 3000억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는 기부 왕이지만 사무실에서 5분 거리인 맥도널드에서 자주 아침을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0년 넘은 습관이라 한다. 아침은 삼천원짜리 햄버거로 간단히 해결한다는 그는 알다시피 세계 최고 갑부이다. 모든 일상사에 검소함이 몸에 배었다고 하지만 특별히 기분 좋은 날엔 베이컨이나 치즈를 추가하는 사치를 즐긴다는 대목에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어른거려 미소 머물게 한다.

워런 버핏과 25년 우정을 쌓아온 빌 게이츠는 햄버거로 하는 식사 자리에서 버핏이 맥도널드 할인 쿠폰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변함없는 성실성과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을 가르쳐 준 버핏을 인생의 선배로 추켜세운 글을 본 적이 있다.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한 버핏이 오늘 아침 식사는 씀씀이를 좀 늘려 햄버거에 치즈를 듬뿍 넣었으면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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