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아픔 담은 예술혼…‘제주문화예술’ 황금기
시대 아픔 담은 예술혼…‘제주문화예술’ 황금기
  • 고현영 기자
  • 승인 2017.03.07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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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의 장소서 전시공간 탈바꿈…다방 의미 확장, 제주문학 산실 거듭
1970년대 제주지역 사진동호회 회원들 모습.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제주일보=고현영기자] 해방 직후부터 ‘칠성로 다방’을 중심으로 형성된 제주 문화예술활동은 1970~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황금기’를 맞는다.

이미 1950~1960년대를 거치면서 문학·미술 작품 등은 ‘다방’이라는 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왔고 단지 차를 마시고 누군가와 약속을 하던 ‘만남의 장소’는 자연스레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담소를 주고 받으며 예술을 논하던 ‘다방’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겐 이상향을 꿈꿀 수 있는 ‘낙원’과도 같았으리라.

1970년대 초 해체 상태에 놓여 있던 제주문인협회 부활의 산증인도 ‘다방’이었다. 제주문인협회 회원 20여 명은 1972년 제11회 한라문화제를 앞둔 8월 30일, 칠성로 ‘천호다방’에 모여 한국문인협회 제주도지부 설치안을 가결하고 주요사업 계획 등을 수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다. 이 시기 다방들이 단순한 작품을 내걸던 곳에서 의미를 더 확장해 제주문학의 산실 역할도 톡톡히 했음을 입증한다.

1970~1980년대 문화예술인들의 주 무대는 천호다방을 비롯해 소라·호수·가람·라오콘·동인다방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방(1975)·탱자꽃모임(1976)·말(1983)·경작지대(1983)·풀잎소리(1982)·초승(1981) 등의 동인들이 그 시대의 요구를 감성과 버무려 글로 승화, 정기적인 시화전·작품 토론회를 열었다.

미술계 역시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방’을 중심으로 부흥기를 맞는다.

1970년 ‘남도동양화종합전’이 산호다방에서 열려 동양화의 뿌리인 호남화단의 작품을 접하는 기회가 됐다.

이어 1971년에는 강용택·양창보·조석춘·강광·김원민·김택화·강영호 등 7명이 ‘화실동인’을 창립, 10월 20일부터 소라다방에서의 전시를 시작으로 매달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며 제주미술 사의 한 획을 그었다.

눈에 띄는 전시도 열렸다. 1976년 정다방에서 열린 ‘고(故) 강태석 유작전’이 그것이다. 가난과 싸워 온 불굴의 화가 강태석의 전시는 친구들에 의해 순수하게 마련됐으며 37점의 작품이 다방 곳곳에 내걸려 그의 업적을 기리는 계기가 됐다.

제주의 자연을 앵글로 담기 위한 사진 동호인들의 취미활동이 왕성했던 시기도 이때이다.

이 당시에는 카메라의 국내 생산이 어려워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왔다. 일본에 친인척이 많아 왕래가 잦았던 제주도에서도 ‘카메라’는 고급 선물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60년대부터 사진도 순수한 취미활동을 본뜻으로 단체가 조직되기 시작했고, 이런 모임들의 활동이 훗날 제주사진 역사의 기초가 됐다.

1976년 11월 대호다방에서 열린 고길홍·서봉준 2인 산악사진전이 물꼬를 튼 후 박수영 개인전(1976년 12월, 대호다방), 서재철 개인전(1977년 4월, 호수다방), 고길홍 한라산의 꽃전(1978년 2월, 호수다방), 성대림 개인전(1978년 12월, 산호다방)이 줄줄이 열리며 전에 없었던 사진 전시의 절정을 이룬다.

이와 함께 1981년 제20회 한라문화제에서 한국사진작가협회제주지부 최초로 도내 자생 카메라클럽 연합사진전이 대호다방에서 열리기도 했다.

제22회 한라문화제 시화전

1980년대는 마땅한 전시공간 없이 다방을 전전하며 작품을 내걸어야 했던 동인회·작가들에겐 획기적인 변화의 물결을 맞이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칠성로를 중심으로 남양미술회관, 한국투자신탁 전시실, 동인미술관 등이 개관하면서 오로지 전시만을 할 수 있는 ‘둥지’가 생긴 것이다. 다방이 그동안 문화예술 발상의 터전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서서히 입지를 낮추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이처럼 그 시대의 다방은 단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작품들을 걸어두는 ‘장소’적 의미를 넘어 누군가에게는 ‘만남’이 있는 설레는 곳이었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치유의 아지트였다.

다방은 불운·비극의 시대를 살아 온 예술인들과 혼을 나누던 곳이었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도전의 장소였으며 작품이 세상에 내보여지기 전 잉태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현재 자리잡고 있는 제주의 문화예술은 그 시대 젊은이들의 쉼 없는 고민과 열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그 모든 과정은 칠성로 ‘다방길’에서 이뤄졌다. 문화부흥의 시발점이 된 칠성로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이유다.

그 시대 이념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처럼 요즘도 작은 카페에서는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전시·북콘서트 등을 열며 고객과 소통하기도 한다. 하지만 브랜드 있는 커피 한 잔도 ‘패션 아이템’이 된 현 시점에서 그 시대 다방이 우리에게 던져 준 문화숙제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때이다.

고현영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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