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불안의 시대, 사회권 실현 담보하는 개헌이 우선
민생불안의 시대, 사회권 실현 담보하는 개헌이 우선
  • 제주일보
  • 승인 2017.03.0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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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탄핵과 조기 대선의 흐름 속에서 개헌 논의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국회 선출의 국무총리에게 권한을 나눠주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꾸자는 것이 핵심이다. 권력 구조의 개혁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촛불 민심을 담은 ‘우리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 한참 부족하다. 대한민국이 어떤 가치들을 보장해 국민의 삶을 어느 수준까지 올려놓을 것인 지가 빠졌기 때문이다. 즉 권력 구조의 궁극적 목적인 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특히 민생과 직결되는 사회권에 관한 논의가 없다.

우리나라 헌법은 제10조의 ‘인간의 존엄’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중심으로 사회권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노동, 보건, 가족 및 보육, 주거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서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사회수당(현금급여), 공공부조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음도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는 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간섭하고 조정하여 궁극적으로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들을 마련해 줄 의무가 있음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헌법 규정과는 너무나 다르다. 헌법이 그리는 사회권이 온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국민 다수가 겪는 오늘날의 불안과 고통이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헌법상의 사회권 규정에도 왜 국민들은 사회권의 실현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하고 있을까? 헌법이 어떤 영역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보장해 줄지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입법∙행정∙사법부를 지배하던 기득권층이 이런 사회권의 성격을 철저하게 자신들을 위해 이용함으로써 헌법상의 사회권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권의 실현을 입법부와 행정부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로 설정했다. 사회권을 구체적인 법률이나 정책들을 통해 실현하고자 할 때 비로소 실질적인 권리가 되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권의 최소한 실현에 초점을 맞춰 재량권을 사용했다. 입법부는 최소한의 입법을 넘어섬에 항상 머뭇거렸고, 행정부 역시 과감한 정책들을 통해 적정 수준의 사회권 실현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사법부, 특히 헌법재판소도 최소한의 보장을 하지 않은 경우나 입법을 했음에도 그 내용들이 최소한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에 한하여 사회권 위반의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이번 개헌은 위와 같은 사회권의 제도적 결함을 해소하는 데 가장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사회권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영역 또한 넓혀야 한다. 이를 위해 헌법 제6조에 ‘국제인권법은 국내법에 우선한다’라는 조항을 새로 삽입해 국제인권법상의 사회권의 영역, 대상, 기준들을 자동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의 의무를 명확하게 규정해 입법·행정·사법부가 사회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적극적인 조치가 있어야 비로소 권리가 실현되는 경우 그 조치를 취한다는 충족의 의무와 권리 실현을 위해 예방 조치들을 포함한 인적·물적·제도적 조건을 마련한다는 증진의 의무를 삽입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다운 생활’이 가리키는 수준을 지금의 ‘최저생존수준’에서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적정한 수준’으로 바꿔야 한다.

헌법상의 사회권을 강화하는 것은 현재 국민이 처한 민생 문제를 해소하는 첩경일 뿐만 아니라 동일한 민생 문제들이 미래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도 하다. 권력 구조를 개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헌법에 사회권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것을 실현시킬 도구들을 명시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누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민생을 안정시켜 ‘적정 수준 이상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고 유지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촛불민심이 정치권을 포함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대적 요구이다.

제주일보 기자  hy0622@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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