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와 장발, 그리고 경적
미니스커트와 장발, 그리고 경적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7.03.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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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일보=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보통 3인조 경찰이었다. 한 사람은 머리 깎는 기계인 ‘바리깡’을 들고 있었고, 또 한사람은  옷감의 길이를 재는 ‘자(尺)’를 가졌다. 나머지 한 사람은 곤봉을 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된다”고 황당해하겠지만 그 땐 경찰이 길가에 서 있다가 머리가 긴 청년과 짧은 스커트를 입은 여학생들을 붙잡았다. 이들에게 붙잡히면 자로 재서 무릎 위 15㎝ 미니스커트는 옷감이 뜯겨 긴 치마가 됐다. 여학생들이 울고불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긴 청년은 ‘바리깡’으로 귀 밑 머리를 밀어버렸다. 순순히 잡히지 않고 도망치다가 잡히면 이마 앞 가운데로 머리를 밀어서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었다.

이른 바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시행한 미니스커트와 장발(長髮) 단속이었다. 이 때문에 대학가에는 미니스커트 여학생들과 장발 대학생들이 다니는 꼬불 꼬불한 좁은 골목길이 있었다. 이 골목길은 미니스커트와 장발의 해방 공간이었다.
1970년대 대학가 풍경이다.

▲여자 경찰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남자 경찰이 여학생들의 스커트 길이를 재었는데, 다행이 옷감이 뜯기지 않은 여학생들도 화를 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내 하반신을 기분 나쁘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당장 ‘성추행’ 쯤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바리깡’으로 수난을 당한 청년들은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박박 깎고 학기 내내 모자를 쓰고 다녔다. 그 때만해도 옷 한 벌이 참 귀한 때다. 미니스커트를 뜯긴 여학생들은 학기 내내 우울증을 앓았다.

지금 긴 머리 청년이나 미니스커트 여학생을 보면 문득 옛 일이 생각나면서 웃음이 나오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상은 변했다. 풍기문란과 미풍양속 기준도 달라졌다. 미니스커트와 장발 단속은 없다. 당시 젊은이들은 “내 옷 내가 입고, 내 머리 내가 기르는데 왜 간섭이냐”고 반발했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풍기문란이라는 이름의 이 ‘기초질서 단속’에 지지를 보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시대에 맞게 기초질서를 규정하는 원칙과 사회의 암묵적 동의가 존재해왔다. 그런 기초질서가 지켜지지 않고, 감시와 단속이 느슨해지면 그 상위법에 대한 존중과 준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지난 해 일본에 갔을 때 일이다.시골 마을 자그마한 역에 갔는데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은 세 사람 뿐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줄을 서있었다. 또 어느 마을 안길을 가는데 뒤에서 승용차가 따라 왔다. 경적(警笛)도 울리지 않고 조용히 따라오는 바람에 앞서가던 우리 일행이 한동안 몰랐다. 그 때 갑자기 일본사회가 무서워졌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생각났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원칙과 사회적 동의로 일단 정한 일이라면 모두 지켜야 한다는 일본인의 의식이 부러웠다.

얼마 전 일이다.
제주시내 한 골목길에서 승용차가 마구 경적을 울려대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가던 젊은 부부가 차를 가로막고 항의했다. 한 20살 쯤 됐을까. 차에서 내린 젊은 운전자는 이 부부에게 한참 눈을 부라리다가 떠났다. 아이는 경기가 들린 듯 계속 울었다.

▲제주경찰이 제주를 상징하는 삼다(三多) 삼무(三無)를 교통안전 슬로건으로 선정했다. 신호준수·양보운전·안전보행을 ‘가장 많이 실천해야 할’ 삼다로 삼고, 난폭운전·음주운전·과속 운전을 ‘없어져야 할’ 삼무로 삼았다고 한다.

요즘 대학에 진학하면 운전면허부터 딴다. 옛일을 돌이켜보면 지금 젊은이들의 마이카 문화가 부럽다.

그런데 우려하는 점은 이들의 ‘소음운전’이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심지어 차에서 내려서 “내가 잘 났다”고 삿대질은 예사다. 목소리는 그렇다고 치자. 일부러 커다란 배기음을 내면서 달리거나,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문제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빵빵 울려대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깜짝깜짝 놀라고 동네 노인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물론이다. “내 차 내가 몰고다니는데 왜 간섭이냐”고 할 지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주택가 골목길에서 경적을 기초질서 차원에서 단속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옛날 미니스커트나 장발 단속처럼 일반 시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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