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노량진의 꿈이여
아! 노량진의 꿈이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3.02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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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준 수필가ㆍ시인/서울제주도민회자문위원

[제주일보] 공무원 시험 준비생(공시생)들이다. 일자리 대란이 부른 ‘공무원 고시’ 열풍의 현장이다.

서울시 동작구 노량진동. 교통의 요충지다. 1호선, 9호선 환승역으로 유동인구가 밀물, 썰물처럼 움직이는 곳.

노량진하면 수산시장이 먼저 떠오른다. 동쪽 언덕 위에 사육신 묘가 있다. 인근에 중앙대와 숭실대가 있다.

조선조 제22대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를 잊지 못해 수원으로 행차하다가 이곳 노량진동에서 잠시 쉬었다. “이곳에 장승을 만들어 세워라” 당부했다. 곧 ‘장승배기’가 노량진(상도동)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노량진’은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잘 알려진 곳이다. 사설학원 때문이다.

우리나라 입시계종합학원 중 J학원과 쌍벽을 이루는 D학원이 대로변에 있다. 공무원고시학원, 경찰직, 공인중개사, 세무사 등 각종 시험대비 학원들이 밀집해 있으니 학원 천국이요, 공시생의 성지(?)가 된 지 오래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을 넘었다. ‘알바’ 등 비정규직을 합산하면 350만에 달한다니 개인의 불행을 넘어 나라의 위기다.

정부 고위 당국자나 정치지도자들은 저마다 자기가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적임자라 자랑한다. 가시적인 성과는 어디에 있는 지 찾아 볼 수 없다

얼마 전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공무원 1만3000명을 뽑는다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일본은 20년 침체기를 벗어나 경제호황기를 맞아 올 봄에 대졸생들의 취업 내정률이 85%라니 부럽다.

청운의 꿈을 안고 이곳 노량진을 찾아 온 공무원 고시 젊은이들이 무려 5만여 명에 달한다니 그들의 고통을 어느 누가 달래 줄까?

대기업체는 신규채용을 억제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더욱 어렵다.

공무원의 매력은 무엇일까? 공무원시험에 준비하는 이유는 이렇다. 안정된 직업을 갖고 싶어서가 압도적(77%)이다.

기업체는 평균 50대에 이르면 ‘희망퇴직’을 권한다. 공무원인 경우 큰 탈이 없으면 60세까지 보장된다.

두 번째 이유는 취업난이 심해서(38%)이며, 마지막으로 연금 등 노후보장(33.3%)이 뒤를 이었다.

이것이 공무원에게 부여된 혜택이 아닐까 판단한다.

노량진 공시생들은 “적어도 공무원 시험은 공평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대학생 중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의향이 있다’(83%) 라는 통계를 보면서 그들은 기업체에 여러 번 지원서를 냈고 면접을 봤으나 뚜렸한 사유 없이 ‘탈락’하는 현실에서 그래도 공정하다고 믿는 공직으로 가는 길을 결심한 것이다.

얼마 전 수능을 마친 고3생들까지도 공무원시험 준비에 합세했다.

이름 있는 대학에 가도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보니 바로 공시생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도 공무원이 좋다고 권유하는 세태다.

2016년도 9급 국가 행정직의 경쟁률은 405대 1, 7급은 135대 1을 기록했다. 어디에도 이런 경쟁률은 없다.

우리의 1960~1970년대는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추진과정에서 공무원들의 열정과 자부심으로 수출 등 큰 실적을 올렸다. 공직사회는 우수한 인재를 요구한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이 ‘안정된 직업’, ‘노후보장’ 때문에 너도 나도 공직을 희망하고 있는데 대해 시비할 일은 아니다.

창의성을 발휘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그 분야에서 1인자가 되겠다는 야심에 불타는 청년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공무원시험에 몰두하는 40만 청년들이여!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기술한국을 선도할 긍지도 가졌으면 한다.

골목길을 나서 노량진 역으로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이 오늘따라 무겁기만하다. 공시생들의 행운을 빌면서….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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