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빌레 황무지 일군 '개척정신'…세계적 식물원으로 꽃피우다
돌빌레 황무지 일군 '개척정신'…세계적 식물원으로 꽃피우다
  • 신정익 기자
  • 승인 2017.02.28 2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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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대)를 잇는 제주기업-(3)㈜한림공원
송상훈 ㈜한림공원 사장

[제주일보=신정익 기자] ‘바람코지 모래밭 돌빌레라도/하늘이 내려주신 땅이 아니냐/이 땅에 뜻을 심고 나선 우리다/슬기와 땀을 부어 가꾸어 가자/…’(중략)

한림공원의 사가(社歌)인 ‘한림공원가’의 일부다. 송봉규 한림공원 창업주의 차녀인 송경옥씨의 곡에 고(故) 양중해 선생이 노랫말을 붙였다. 46년 전인 1971년 돌빌레가 널려있고 가시넝쿨이 얽히고 설긴 모래밭 황무지에 기적의 삽질이 시작된 상황을 참 잘 묘사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개척정신의 발로였지만,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시도일 뿐이었다. 한림공원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반세기 대를 이어 ‘개척정신’이라는 한결같은 마인드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식물원 반열에 오르면서 명성을 높이고 있다.

▲송봉규 회장, 손수레 끌며 기반 정비=송봉규 창업주는 20대 청년시절부터 지역개발, 특히 관광산업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제주를 먹여 살릴 산업은 관광이 될 것이라는 소신을 키우던 그는 1970년 일본을 찾아 자신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 때 협재와 금릉, 비양도가 그림처럼 펼쳐진 고향 한림이야말로 자연환경을 이용해 국제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한림공원의 역사(役事)는 이렇게 시작됐다.

1970년대 중반 야자수길 조성 모습(좌) 1980년대 재암민속마을 조성 모습

1970년대는 토지를 확보하는 등 한림공원의 물적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시기였다. 송 회장은 직접 지게를 지고 손수레를 끌면서 가시덩굴을 치우고 돌밭을 정리했다.

관광농원을 개발할 수 있는 법적토대가 미비해 정리 작업을 마친 농장에 야자수와 느티나무 종묘를 키웠다. 아열대식물을 옮겨 심으면서 언제든지 공원조성에 착수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갔다. 송 회장은 그렇게 10여 년을 한림공원의 태동을 위한 준비에 공을 들였다.

▲창업주와 2세 경영인의 ‘의기투합’=한림공원이 본격적인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82년부터다. 공원법에 개정돼 개인도 공원을 조성할 수 있는 길이 열려 한림공원 조성사업이 북제주군으로부터 허가를 받았다.

당시로는 상당한 규모인 11억4000만원을 들여 공원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송 회장의 야심찬 계획이었다. 공원 조성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1983년에는 쌍용굴과 협재굴을 연결해 일반에게 공개했다. 관람객을 위한 휴게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들도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한림공원의 상징적인 시설인 아열대식물원 조성도 이 시기에 속도를 냈다.

송 회장은 1984년 차남인 상훈씨를 총무과장으로 불러들였다. 상훈씨는 당시 서울에서 고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상훈씨는 큰 고민 없이 부친의 제안에 흔쾌히 응해 가업에 동참했다.

이 때까지 공원개발 주체는 ‘협재굴 관리사무소’였으나 주식회사 한림공원이라는 법인으로 바뀌었다. 송 회장은 대표이사로 공식 취임했다. 마침내 창업주와 2세 예비 경영인이 의기투합해 한림공원의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까지 한림공원은 아열대식물원 공개, 재암민속마을 신축, 어린이놀이동산 준공, 주차장 확장 등 하루가 다르게 변신을 거듭했다.

송상훈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버지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1960년대부터 공원조성 계획을 세운 것도 그렇고, 개발이 늦어지자 농장에 육묘장을 만들어 준비를 한 것 등을 보면 대단한 의지와 경영비전을 겸비했다”고 평가했다.

야자수와 선인장들로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야자수길 전경.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테마공원으로 글로벌 인지도 확산=1990년 10월 송 회장의 뒤를 이어 30대의 젊은 송상훈 대표이사가 취임해 경영 전면에 나섰다. 그는 한림공원이 다양한 테마를 갖춘 국제적인 공원으로 국내·외에 인지도를 넓히는데 주력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종합식물원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도록 시설 확장과 다양한 전시 이벤트를 진행했다. 1월부터 12월까지 계절별 꽃을 주제로 한 10개 꽃축제가 화려하게 열려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한림공원의 글로벌 인지도가 확산되면서 국내‧외 유명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지고 있다.

1995년 11월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찾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0년 10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총리에 이어 2002년 11월에는 북한 고위급경제시찰단 박남기 단장 등이 방문해 ‘통일의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갑시다’라는 글을 남겼다.

송봉규 창업주(사진 오른쪽)와 송상훈 사장

▲2代 송상훈 사장=한림공원 송상훈 사장(60)은 ‘원장’으로 불리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30여 년간 땀을 흘리며 창업주인 부친과 함께 직접 가꿔 온 한림공원에 대한 진한 애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다.

송 사장은 1984년 부친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접고 한림공원의 전신인 ‘협재굴 관리사무소’의 총무과장으로 귀향했다.

2년 후 ‘협재굴 관리사무소’를 한림공원으로 바꾸고 법인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30여 년의 일상을 한림공원과 함께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있다. ‘원장’이라는 이름표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시간들이다. 2500여 종의 각종 식물에 그의 애정이 녹아있다.

기자와 만난 지난달 24일에도 작업복을 입고 현장에 있었다.

그는 요즘 야심차게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귀뜸했다. ‘한림공원 둘레길’이다. 공원 외곽 2㎞에 걸쳐 조성한 둘레길이 마무리 돼 곧 선을 보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걸어서 2시간 정도 ‘힐링’할 수 있는 코스로 설계했다. 친환경 이미지에 걸맞게 전기차 운행도 검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기존 9개 테마에서 1개 테마가 더 늘어난다.

송 사장이 지향점은 세계적인 아열대 테마 식물원으로 입지를 굳히는 일이다.

그는 공원 인근에 관람객들이 체류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하면 공원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 계획의 일단을 내비췄다.

그는 “사계절 테마가 있는 종합식물원으로 세계인이 주목하는 날이 멀지 않아 올 것”이라며 여전히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신정익 기자  chejugod@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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