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평포구 나서면 두 갈래 길…중산간 마을 '난산리'로 발걸음
온평포구 나서면 두 갈래 길…중산간 마을 '난산리'로 발걸음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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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집의 올레이야기-8. 올레 제3코스(온평포구~표선해변) -온평포구~독자봉(8.1㎞)
올레 3코스는 A, B 코스로 나눠져 있다. A코스는 출발점에서 500m의 해안가를 걸은 후 중산간 마을을 돌아 다시 해안으로 내려오는 길이고, B코스는 신산리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다. 사진은 올레 3코스 해안길.

[제주일보] # 온평포구를 지나며

온평포구 2코스의 종착점이자 3코스 시작점은 올레길이 나면서 쉼터를 만들고 그 주변을 아름답게 꾸몄다. 해변에서 모아온 돌로 동산을 꾸미고 산책길을 만들어 옆에다 주저리주저리 세운 것이다.

혼인지의 신화소(神話素)가 가득 담긴 돌로 삼신인과 세 공주의 형상을 만들려는 노력이 돋보이고, 온평 바닷가에 유난히 많이 몰려드는 갈매기와 가마우지 같은 모양의 돌들을 모아 장식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기지 못한다. 이는 온평리 주민들이 올레꾼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성원이다.

올레 3코스는 A코스와 B코스로 돼 있다. 처음에 시작한 길은 물론 A코스이다. 난산리와 신산리를 거치는 중산간 마을이 주는 이미지와 통오름과 독자봉 같은 조그만 오름을 오를 수 있는 이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김영갑 갤러리를 거치게 하고 싶었을 터이다.

그래서 500m의 해안가를 걸은 후, 중산간을 돌아 다시 해안으로 내려온다. 신산목장이 매력을 떨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어느 곳 못지않은 신산리의 해변을 그냥 둘 수 없어 B코스로 하고, 그 접점을 절묘하게 이어 붙였다.

출발 지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첨성대 모양의 돌무더기를 만날 수 있다. 온평포구 도대이다. ‘도대’는 등대가 생기기 전, 그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포구 머리에 자연석으로 쌓아 맨 위에 등 넣는 곳을 만들었다.

석유를 사용하기 전에는 고기에서 얻을 수 있는 기름을 사용하거나 ‘솔칵’이라는 송진이 밴 관솔 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섬에 그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17군데로 파악된다.

# 난산리로 가는 길

일주도로를 건너면 ‘보석 신명암’이란 간판 아래 올레길 표시가 돼 있다. 이제 새로 창고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오른쪽으로 우묵사스레피나무를 비롯한 후박나무, 참식나무,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의 상록활엽수군과 함께 시멘트 농로를 걷게 된다. 여기도 귤나무 과수원이거나 무밭이 이어진다.

소나무가 사라진 동산 근처엔 콘도 같은 집들이 더러 들어서고 길섶은 잘라버린 나뭇가지와 찔레, 칡 같이 마른 덩굴들이 뒤엉켜 어지럽기 짝이 없다. 새잎이 그 위를 덮어버리는 6월까지는 이런 환경이 계속될 것 같다.

그 속을 뒤져 호미 없이 ‘꿩마농(달래)’ 한 줌을 캐었다. 특유의 진한 향기가 묻어난다. 어지러운 덤불 속에서 어떻게 그걸 찾았냐고 묻지 말자. 문제는 관심이다. 관심을 갖고 집중하면 다 보인다. 지금 우리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 올레도 서명숙 여사가 관심을 갖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물이 아니던가.

근데 꿩마농을 가지고 뭐 해먹지? 가다가 주막에 들리면 막걸리 안주로도 그만이고, 들기름 두어 방울과 간장만 뿌려도 더 없이 좋은 반찬이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휘파람이 절로 난다. ‘고향의 봄’과 ‘아! 목동아’를 연주(?)하며 한동안 아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새로 만들어 세운 동자복과 돌하르방들

# 4·3 때 큰 불행을 겪었던 난산리

길 양쪽으로 상록활엽수가 우거졌다 싶더니, 오른쪽에 돌하르방이 세워져 있다. 동자복도 의젓하니 원형 못지않아 보인다. 듣기로 제주의 옛 47기의 돌하르방을 재현해 안쪽으로 세워 놓았다고 하니,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미지로 근래에 만들어진 크고 작은 돌하르방 모형은 많지만,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 앞에 가 있는 2기를 포함한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크기와 형태가 다른 돌하르방은 북촌돌하르방 공원과 돌문화공원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난산리(蘭山里)’의 옛 이름은 ‘난미’로 오늘날 한자의 뜻으로 풍수지리설을 이용해 풀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마을로 들어서면서 대나무 숲이 더러 나타난다. 4·3 때 사라져버린 집터이다. 난산리는 중산간이지만 해변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그 때 많은 희생자를 냈다. 서청의 만행으로 4~5명의 주민이 총살당한 후 두려워 입산 피신했다가 당하기도 했고, 소개령이 내려졌다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취소해 마을 중심에만 성을 쌓도록 함으로써 바깥에 위치한 집들은 거의 불태워졌다.

 

# 통오름과 독자봉

중산간도로(1136번)로 나서면 약간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나 있다. 이는 통오름 진입을 위해 북쪽 오름 능선으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함이다. 비고 43m 밖에 안 되는 오름이지만 통처럼 우묵한 분화구를 갖고 있으며, 북쪽 능선에서 길게 신산리와의 경계를 이룬다.

둘레 2748m의 오름은 전 사면이 완만한 기복을 이루면서 둥글고 낮은 5개의 봉우리가 화구를 에워싸고 있다. 화구는 거의 원형 분화구 형태를 띠고 있으나, 서쪽으로 좁은 골짜기를 이루며 용암유출로가 형성돼 말굽형 화구를 이뤘다. 동쪽 능선으로 돌아나가게 돼 있는데, 전에 방목을 하던 시절에는 꽃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들꽃이 많았으며, 가을에는 물매화를 비롯 당잔대·산부추·쑥부쟁이·자주쓴풀·꽃향유·패랭이꽃 등이 장관을 이룬다.

길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길게 보이는 독자봉은 정상에 봉수대 원형이 뚜렷이 남아 있는 오름으로, 이를 답사하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다. 중간에 오름이 드물어 표고 159.3m, 비고 79m밖에 안되지만, 조선시대 정의현에서 독자봉수를 설치하고 북동쪽 수산봉수, 서쪽 남산봉수와 교신을 했었다.

독자봉수는 오름 정상 중심부에서 반경 14m의 둘레에 둑과 둑 사이 방화선 고랑을 두어 이중으로 쌓고, 다시 1.9m 높이로 한 단 높게 9.5m의 봉우리 형태가 되도록 흙으로 쌓아올린 원형 봉수대이다. <계속>

<김창집 본사 객원 大기자>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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