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포근함이 가득찬 사랑으로 다가왔으면
봄은 포근함이 가득찬 사랑으로 다가왔으면
  • 뉴제주일보
  • 승인 2017.02.2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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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하. 수필가

[제주일보] 매화꽃이 피었다. 긴 겨울 끝에 처음으로 이 세상에 꽃을 피우는 자의 엄한 절제력 때문일까. 결코 서두름 없이 햇볕이 가장 많이 닿는 곳부터 하얀 꽃송이를 달아 놓기 시작하더니 거의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른 이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완성한 것이다.

봄은 어느덧 우리 곁으로 다가왔지만 마음은 아직도 겨울인 모양이다. 사랑과 믿음이 사라지고 거짓과 진실의 경계선에서 바쁜 세상은 자연의 순리를 읽지 못하고 있다. 냉한 얼음과도 같이 차갑고 닫힌 가슴을 갖게 한 것은 무엇일까.

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아파트 정문으로 들어가려는 데 ‘차르랑!’ 하는 거친 소리가 들렸다. 얼른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저지레가 옹골찬 꼬마들이 다 마신 음료수 깡통을 찼던 모양이다. 깡통은 찻길로 덜컹 떨어진다. 순간 바람소리를 내며 한 대의 승용차가 떨어진 캔을 짓누르고 지나간다. 납작해진 사각의 알루미늄 판이 되어버렸다. 제작업체의 상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음료수 업계에서는 유명한 회사의 것이다.

기구한 운명이다. 유명 회사에서 출시되어 편의점 냉장실에 전시되었을 때만하더라도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한 번쯤은 갈증의 목을 유혹했을 것이다. 냉장고 유리창을 쳐다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맘껏 뽐냈을 법하다. 결국은 1000원이 안 되는 가격에 팔리고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차에 짓눌리는 수모를 겪으며 자신의 운명을 다하고 있다.

요즘 특검, 탄핵의 세파에서 자신의 운명이 갈린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침이슬과 같은 짧은 시간의 달콤한 권력에서 오명의 수렁으로 떨어져 자신과 가족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사건들이 비일비재하다. 유아독존이라는 생각에 파묻힐 때 그는 모든 것의 주인공이라는 착각으로 부족함이 없는 채워짐의 함정에 빠져버린다. 마치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어눌한 모습이다. 교만이다. 교만은 진실을 가리는 마음의 색안경과도 같아서 영혼의 순수성을 혼탁하게 만든다. 순수성이 없는 인간에게 사랑이라는 것은 이미 떠나버렸다. 우리들 삶 속으로 사랑이 와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고 그 속에서 나 아닌 또 다른 삶으로 변화됐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족들에게 진정으로 귀중한 선물은 권력이나 재물이 아닌 미래를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닐까.

봄에 처음으로 피어나는 매화는 어떤 꽃인가.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이 꽃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깨끗한 마음, 맑은 마음이다. 매화나무는 한겨울 추위를 이기고 봄에 꽃이 피기 때문에 불굴의 의지로 표현되며 의로운 선비 정신의 초상으로 여기기도 했다. 첫 계절을 알리는 매화의 꽃말은 한 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마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이라는 마음가짐과 스스로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찌그러진 깡통은 어떤가. 사실 우리가 보는 것은 외형적인 깡통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던 시원하고 달콤한 음료수가 실질적인 깡통의 가치다. 갈증에 목말라하던 어느 누군가가 행복하게 마실 수 있었다면 깡통은 그에게 사랑이라는 선물을 주고 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에 숭고한 가치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찮게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다.

얇은 얼음 속을 뚫고 돌돌돌 흐르는 개울물 소리. 도로롱 소리 내며 우는 산새소리, 푸른 하늘의 새털구름이 그려지는 봄을 가슴으로 담아 보자. 그 속에 담긴 자연의 메시지는 삶의 여유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긴 암흑의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새롭게 맞이하는 광영한 밝기의 봄, 봄은 포근함이 가득찬 사랑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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